이런 영웅은 싫어 / 오수 드림
*약간의 폭력, 유혈주의
*캐해석, 설정 날조 주의
*급전개 급마무리주의
거칠어지는 숨소리. 다급한 행동. 그 와중에도 한 곳에 눈을 땔수 없었다. 자신과는 먼, 시선의 끝은 두 사람에게 가있었다. 웃으면서 대화를 하는 맞은편에 있는 그를 보며 인상을 쓴다. 원망하려면 네 친구를 탓해라. 작게 중얼거리고선 몸을 돌린다. 몸을 돌리자 잠시 끊긴 대화. 다 큰 남자 둘이서 저렇게 붙어 다니는 거라면 분명 보호받는 저 남자는 부잣집 도련님이 틀림없다고 파악한다.
“왜 그래요?”
“아니야. 아무것도. 오늘은 형한테 맛있는 거 해달라고 할까.”
다시 이어진 대화는 점점 작게 들리자 골목 밖으로 겨우 나온다. 바닥에 침을 뱉고 사람들 사이로 숨어 뒤따라 간다. 숨을 죽여 상황을 지켜본다. 반드시 기회는 온다. 두 사람은 인적이 드문 곳으로 걸어가다 한 남자가 멈칫한다.
“집으로 먼저 가 있어. 금방 올 테니까.”
“네. 다녀오세요.”
한 사람이 빠르게 어디론가 향하고 남은 한 사람은 그대로 가던 중 그에게로 다가가 미리 준비한 약을 천에 부어 버린 뒤 입으로 틀어막는다. 주변엔 사람도 없었다. 버둥거리는 몸은 쉽게 가라앉고 해냈다는 기쁨에 얼굴엔 웃음기가 서린다.
분위기가 내려앉은 어두운 공간. 여러 사람이 모여 대형 스크린 화면에 띄어진 별거 아닌 브리핑을 듣고 있다. 중요 사건 브리핑도 아니었지만 서장인 염호가 있으니 다들 집중해서 스크린을 보고 있었다.
물론 졸고 있던 한사람 빼고. 머리가 까딱이며 쓰고 있던 파란 나뭇잎 가면도 함께 움직인다. 무언의 헤드뱅잉을 보던 브리핑을 하던 형사가 그의 눈치를 보며 이었다. 다른 형사들이나 서장인 염호마저 무시하고 그의 브리핑을 들었다. 어디서 들려오는 벨 소리에 겨우 이어가던 브리핑이 끊기고 바로 옆에 있던 염호가 그의 어깨 위로 손을 얹는다.
“일어나.”
“벌써 끝났어?”
“아직 하는 중이니까 나가서 전화나 받아.”
“아, 뭐야. 모르는 번혼데.”
나가서 전화받으라는 말을 무시하고 그대로 받는다. 그의 행동에 회의실 안에 있던 신입 형사는 염호와 그를 번갈아보며 동공을 빠르게 움직이고 고참은 또 저러네 하고 넘어간다.
“여보세요?”
[잘 있었나?…]
“누군데 내 이름을 알고 있어?”
[이렇게 눈치가 없어서야. 야, 너 말해봐.]
[제가 무슨 말을]
“오수야!!”
쾅 소리와 함께 그는 몸을 일으켰다. 전화 너머로 웃음소리가 커지고 그의 표정이 점점 심각해진다. 화가 나도 웃는 얼굴인 그가 이렇게까지 심각한 얼굴을 보이지 않던 사람이라 회의실 안에 있던 모두에게 시선이 집중된다.
장소와 시간만을 말하고 끊자 그는 들고 있던 스마트폰을 집어던지려다 염호에 의해 저지된다.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그만해. 앞으로 그 폰으로 연락을 해올 텐데 부서서 어떻게 하겠다는 거야?”
“…나 이만 퇴근할게.”
“무슨 일인데?”
“나중에 얘기해줄게. 알았지?”
“……알겠으니까 가봐.”
손을 놔주자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밖으로 나간다. 나가자마자 차를 타고 약속된 장소로 이동했다. 약속 장소가 적혀있는 곳이 어딘지 알 것 같았다. 목소리도 기억이 났다. 어느 조직을 체포할 때 탈출한 몇 명 중 한 명이었다. 소릴 지르며 도망을 가서 기억이 났다. 어째서 오수를…….
그는 케이블 타이 여러 개를 들고 차에서 내렸다. 주머니 속에 넣어 익숙한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다시 이곳을 볼 줄이야. 들어가자마자 달려드는 검은 옷을 입은 남자들을 보면서 그는 숨을 길게 내쉰다.
방 밖에서 들리는 비명소리에 오수는 덜덜 떨었다. 눈이 가려진 채로 통화를 하고 다급한 목소리가 들리자 옆에 있던 남자는 제 말만 하고 끊었다. 분명 그가 혼자서 올 것이 확신했다. 오지 말라고 했어야 했는데. 쾅 소리가 나면서 문이 열렸다. 무언가 던져져 벽에 부딪치는 소리도 들렸다. 괴로워하는 소리가 이어지자 오수는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약속대로 혼자 왔어.”
“진짜로 혼자 오다니 대단한데?”
“그래서 뭘 원하는데.”
“형님을 풀어줘.”
“누가 보면 죄없는 사람 잡아간 줄 알겠네.”
점점 다가오는 발소리. 무슨 말을 해야 하는데 오수는 할 수가 없었다. 하고 싶은 말은 많았지만 입이 열리지 않았다. 그가 자신을 보는 것도 모른 체.
그가 제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뒤로 넘기며 대충 시야가 보일 만큼 정리한다. 눈앞에서 오수를 인질로 잡고 있는 남자의 찌질함에 혀를 찬다. 그것이 기분 나빴는지 남자는 오수 쪽을 보더니 발로 찬다. 강하게 몸이 옆으로 획 쓰러지자 그의 표정이 바뀐다. 남자는 씩 웃는다.
“전과는 다른 표정이라 놀랐어. 그런 표정도 지을줄 아네.”
“이런 상황에서 침착한 사람도 있나 봐.”
“고작 친구 때문에 이런 짓을 하다니.”
“고작 친구? 너한테 친구는 고작이라니 친구하나 없겠네. 너 같은 놈한텐.”
또다시 한 발짝 그러다 멈추지 않고 앞으로 걸어왔다. 점점 남자의 얼굴은 다급함이 느껴진다. 칼을 들어 오수 쪽으로 휘둘렀다.
“넌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을 했어. 내 소중한 사람을, 가족을 인질로 잡은 거 말이야.”
휘둘렀던 칼은 그의 손에 의해 멈춘다. 칼을 잡아서 다른 곳으로 던지자 남자의 표정이 점점 안 좋아진다. 오수의 눈을 가리고 있어서 다행이었다. 남자의 가슴팍을 발로 차 쓰러뜨려 오수에게 거리를 두게 한다. 놀라 움찔하는 오수를 보고 그의 팔을 뒤로 꺾어 남아있던 케이블 타이로 손발을 묶었다. 그러다 짜증을 내며 손발을 묶은 케이블 타이 사이로 새로 케이블 타이를 엮어 몸이 웅크려지게 했다.
“오수야. 나야.”
오수를 묶고 있던 끊을 잡아당겨 끊었다. 그런 행동에 남자는 당황해한다. 저런 사람에게 덤볐다는 게 실수였다고 악을 쓰며 소릴 지르자 그는 웃으면서 검지를 제 입에 가져다 댄다. 조용히 하라는 무언의 압박. 남자는 덜덜 떨며 입을 다물었다. 안 그러면 진짜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았다.
이런 분위기를 전혀 파악하지 못한 체 오수는 그가 있다고 생각한 방향으로 손을 뻗었다.
“괜찮아요? 어디 안 다쳤어요?”
“응. 그런데 여기선 그렇고 밖으로 나가면 눈을 풀어줘도 될까?”
고개를 끄덕이는 오수에게 미안하다며 꼬옥 안았다. 그리곤 오수의 손을 잡고 다른 한 손으론 스마트폰을 꺼낸다. 염호 덕분에 멀쩡한 스마트폰을.
“나야. 톡으로 장소 보냈으니까 있는 애들 다 데려와. 저번에 체포 못한 조직원들 다 여기 있으니까. 아냐, 안 다쳤으니까 신경 쓰지 마. 빨리 쟤네들이나 데려가기나 해.”
급하게 통화를 종료하고 빨리 오수를 데리고 나왔다. 나가기 전 깨진 거울로 보이는 제 모습에 묻은 피를 대충 바닥에 있던 휴지로 닦아낸다. 쓴 휴지는 바닥에 그대로 던져놓고 머리카락도 정리한다. 제 꼴을 보고선 옅게 웃으며 오수 쪽으로 몸을 돌려 눈가리개를 푼다. 눈에 빛이 들어오자 눈을 끔뻑이는 오수를 끌어안았다.
“미안해. 미안해, 오수야. 나 때문이야.”
“전 괜찮아요. 피, 피가…!”
“아아. 이거 내 피 아냐.”
“정말요?”
“응. 오수가 괜찮다니 정말 다행이야.”
포옹을 마치고 그가 살짝 눈을 찡그리며 몸을 일으킨다. 걱정하는 오수에게 활짝 웃는다. 경찰차 몇 대가 요란하게 소리 내면서 오자 엄지로 건물 뒤편을 가리키며 빨리 들어가라고 말하며 오수를 제 차에 태우고 집으로 향한다. 일호와 이호가 기다릴 집으로.
차가 어느 꽃집 앞에 멈춰 선다. 성인이 되자마자 본가에 나와 이곳에서 지내는 곳. 현재 오수의 집이다. 오수의 연락을 받은 일호가 급하게 뛰어나와 오수의 상태를 확인한다.
“저는 괜찮아요. 그보다…….”
“괜찮아요. 얘는 누굴 다치게 하지 다쳐오진 않을 테니까요.”
“일호쌤 너무하잖아요.”
“일단 이호가 걱정하고 있으니 들어가서 방으로 가있어요. 피 묻힌 걸 보면…”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자 오수는 알겠다며 안으로 들어간다. 오수가 시야에서 사라지자 그제야 숨을 길게 내쉬며 허리 쪽을 붙잡고 문 옆에 기댄다. 일호는 바닥으로 떨어지는 몇 방울을 보고선 문에 기댄 그에게 다가가 상의를 걷는다. 허리엔 무언가에 찔린 상처가 있다. 그는 일호의 손을 탁 쳐내며 옷을 바로 내린다. 옷 위로 피가 스며든다.
“갑자기 뭐하는 거예요? 전 이만 갈게요.”
“어딜 가요. 치료받아야죠.”
“저 옷도 갈아 입, 악, 아파요!”
“언제는 제 옷 안 입었어요? 빨리 들어와요.”
귀를 잡아당겨져 끌려가던 그는 아프다고 큰소리를 내려다 오수에게 들킬까 제 입을 틀어막았다.
한편, 제 방으로 올라간 오수는 저를 걱정하던 이호에게 괜찮다며 손을 잡았다.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묻고 그동안 있었던 일을 말해주자 듣고 있던 이호는 더 미안해한다. 하지만 그런 상황이 있었음에도 오수의 표정은 밝았다. 어째서일까. 이호가 묻기도 전, 오수가 먼저 입을 열었다.
“저만 그렇게 생각한 줄 알았어요. 친구이자 가족이었으면 좋겠다고.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게 너무 기뻐요.”
오수의 말에 멈칫하던 이호는 잠시 누군가를 떠올렸다. 그러다 웃는 오수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아래층에서 들리는 제 형과 그의 목소리가 끊이질 않자 내려오라고 할 때까지 오수 옆에 있기로 한다. 지금 갔다간 언제 불똥이 튈지 모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