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카세카 이벤트 스토리 ‘가을빛을 찾아서’ 전체 스토리, 테이카 개인 스토리 언급 있습니다. 스포주의.
● 드림주가 한국인으로 무녀보다 1년 먼저 히노모토에 떨어졌다는 설정입니다. 드림캐들은 전부 드림주를 일본 이름으로 부릅니다.
● 드림주는 무녀가 아닙니다. 무녀가 따로 있다는 설정으로 드림 서사를 구성합니다.


‌ “가을을 즐기기에 딱 좋은 시간이로구나.”
 “정말 니니기 씨 말 대로네요.”
 “랑, 너는 술을 마시지 않아도 괜찮으냐?”
 “상관없어요. 술이야 저 사람들이 마시면 되는 일이고. 딱히 술 마시고 싶다는 생각이 안 들어서요.”
 은란은 그렇게 말하며 테이카와 마사무네, 야타가라스를 돌아보았다. 그들과 달리 무녀, 니니기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던 중이었다. 마사무네가 유채 기름으로 음식을 만들고 싶다는 걸 말리는 둘을 보다가 원래대로 고개를 돌린 그였다.
 “그러고 보니, 랑 씨.”
 “네, 무녀님.”
 “아의 나라에서는 작년에 무슨 일을 했어요?”
 “가을 행사요?”
 “네.”
 “어, 작년에는 츠라유키 님이 주관하셔서 다들 즐겁게 있었어요. 가인들이 자기 장기를 마음껏 뽐내기도 하고요.”
 “그러면 이번에도 랑 씨는 연주를 했나요?”
 “낮에는요.”
 “낮에는? 그게 무슨 말이냐?”
 “밤에는 다른 행사가 있었거든요.”
 “오오. 그것 참 다채로운 구성이로구먼.”
 “네. 그런 셈이죠.”
 대꾸한 은란은 다시 고개를 돌렸다. 하늘빛의 멋스러운 머리카락이 눈에 띄었다. 손님이 오기 전, 갑자기 테이카가 한 일을 생각하며 그는 묘한 웃음을 지었다.  
 테이카는 연주를 마친 은란을 불렀다. 은란이 간 곳은 정체 모를 정자였다. 며칠 전 공사를 하는 것 같더니 이걸 지으려고 했던 건가. 그 생각에 미친 그가 테이카를 불렀다.
 “테이카 님.”
 “랑이냐?”
 “정자가 근사하네요.”
 “그래. 인부들이 공사를 다 마쳤더구나.”
 “이건 이제 화궁에서 관리하는 건가요?”
 “아무래도 그렇게 되겠지. 완공된 김에 내가 먼저 쓰고 싶다고 말해 두었다.”
 “뭐 때문에요?”
 “너와 이 자리에서 시를 한 번 지어보고 싶더구나. 어떠냐?”
 “하아.”
 은란은 그 말을 듣자 고개를 가로저었다. 1년 정도의 시간 동안 테이카와 다른 화궁의 가인들에게 시를 배우기는 했지만 앉아서 글을 쓰는 건 영 적성에 맞지 않았다. 하지만 테이카가 하자는데 차마 거절할 수가 없어 미적지근한 태도로 정자 위에 올라 엉덩이를 붙였더랬다. 그 모습에 테이카가 의외라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싫다고 할 줄 알았더니.”
 “아름다운 것을 향한 테이카 님 고집을 제가 모를 리 있어요?”
 “하긴 그렇구나.”
 작게 웃음을 터뜨린 테이카가 은란의 맞은편에 앉았다. 그는 이미 지필묵을 가지고 있었고, 은란에게 종이와 붓을 건네주었다. 시련의 시작이다. 은란의 얼굴에는 그런 생각이 보였다.
 “표정이 과녁을 눈앞에 둔 무사 같구나.”
 “놀리지 마세요. 저 진짜 심각해요. 사다아키라 님이 제 시 볼 때마다 항상 한숨 쉬는 거 테이카 님이 제일 잘 아시잖아요. 그런데 왜 하필 시예요?”
 사다아키라가 한숨을 쉴 만한 일이기도 했기에 은란은 할 말이 없었다. 종종 가인들은 소재를 주고 그에 맞는 시를 짓곤 했는데, 은란의 시는 열 글자도 채 되지 않았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었다.

‌손

‌시로 랑(백은란)

‌시렵다.

 어딜 봐서 이게 시냐며 사다아키라가 잔소리를 늘어놓았고, 츠라유키는 조금 생각해 보더니 참신해서 좋다고 해 주었다. 물론 은란은 츠라유키가 완전히 칭찬을 해 줬다고 보지 않았다. 그런 식인 제 시를 뻔히 다 알면서 시를 쓰자고 하다니. 테이카가 자랑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한 은란이었다.
 “솔직히 말씀해 주세요. 자랑하고 싶으신 거죠?”
 “그럴 리가 있겠느냐.”
 “그러면 뭔데요?”
 “이번에는 문장을 이어 적어서 하나의 시를 만들자는 게 내 생각이다. 네 서툰 시가 내 시를 만나게 된다니, 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이냐?”
 “아, 네. 그러시겠죠. 그러면 저는 테이카 님이 다 지을 때까지 기다리면 되는 거죠?”
 “그래.”
 “그러면 기다리세요. 차라도 가져올게요.”
 차를 가져오겠다며 은란은 정자를 벗어났다. 제가 손수 만든 국화떡과 차를 보며 그는 한숨을 쉬었다.
 “뭐가 예쁘다고 이런 걸 챙겨주고 있는 거야.”
 작게 중얼거리며 입술을 삐죽이지만 은란은 보기 좋은 떡들을 담고, 차에 꽃잎을 띄우는 정성을 보였다. 그리고 정자에 다시 올라가 테이카 몫과 제 몫을 나눴다. 차향이 좋았다. 테이카는 시에 열중하느라 다과를 보지도 않고 종이만 바라보고 있었다. 한참 종이만 뚫어져라 보더니 붓으로 정갈하게 글씨를 적어갔다. 그의 긴 속눈썹이 은란의 시선을 잡아끌었다. 외모는 예쁘네. 그런 생각에 미친 은란이 얼굴이 붉어진 걸 느끼고 고개를 휘휘 저었다. 그런 와중에도 테이카는 은란 쪽으로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됐다.”
 “주세요.”
 은란은 애써 태연한 얼굴로 손을 내밀었다. 테이카는 제 쪽에 놓인 다과를 보고 빙긋 웃다가 은란에게 종이를 내밀었다. 그리고 꽤나 만족스럽고도 자랑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설마 네가 이렇게까지 썼는데 짧게 이어 적지는 않겠지.”
 “그렇게 대단한 걸 쓰셨나 봐요.”
 “아마 네가 보면 깜짝 놀랄 것이다.”
 “네네.”
 그래 봤자겠지. 분명 어렵고 바로 와닿지 않게 썼으리라 생각한 은란이 종이를 받아들고 한 자 한 자 읽기 시작했다. 그럴수록 은란의 얼굴은 다시금 열이 올랐다. 차를 마시던 테이카는 은란의 반응을 보고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이해할 수 있도록 자세하게 적었으니 분명 의도 정도는 알 수 있을 터였다. 은란은 겨우 글을 다 읽더니 차를 한 모금 마시고 나서 테이카 쪽으로 다가갔다.
 “왜 그러느냐?”
 “저 그런 거 딱 질색이예요.”
 “응?”
 “고백을 할 거면 말로 하란 말이예요. 얼굴 보고 하는 게 제일 좋다고요. 자, 그러니까 빨리.”
 “뭐?”
 “아, 빨리요!”
 채근하는 목소리에 테이카가 적잖이 당황한 얼굴을 했다. 이만하면 좋은 답을 적을 줄 알았는데 은란은 역시나 제 예상과는 정반대인 인간이었다. 곧 죽어도 말로 듣겠다며 성화를 부리는 그를 보다 테이카는 한숨을 쉬었다.
‌ “너는 정말 시라고는 하등 재미가 없는 것이냐?”
 “재미가 없다기보다는 고백은 직접 듣는 게 좋을 뿐이예요. 안 하면 제가 먼저 합니다?”
 “자, 잠시만 기다리거라!”
 은란이 먼저 고백을 하겠다는 말에 테이카가 놀라 눈을 크게 뜨고 그를 만류했다.
 그리고 어떻게 됐더라. 은란은 그 생각을 하면서 제 머리에 꽂힌 비녀를 매만졌다. 양갈래로 묶은 머리라 굳이 비녀를 꽂지 않아도 된다고 했음에도 부득부득 우겨 산 걸 떠올린 그가 입꼬리만 올려 웃었다. 그 모습에 니니기가 말했다.
 “랑은 테이카를 좋아하는구먼.”
 “네, 뭐 그래요. 자아도취는 심하지만 나쁜 사람은 아니니까.”
 그렇다고 말은 했지만 역시 사랑에 빠진 얼굴이라 니니기와 무녀는 서로 눈을 마주하고 있다가 은란을 바라보며 미소지었다. 좋아하는 사람들이 맺어지는 모습은 언제나 특별한 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