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편 기준 10여 년의 시간이 흘렀다는 설정입니다.
● 드림캐가 직접적으로 드러나지 않습니다.
● 스포일러, 날조 있습니다.


 “세이라 짱.”
 키미히로의 부름에 세이라는 고개를 돌렸다. 날렵한 정장을 입은 그는 꽤나 멋스러워 보였다. 단추를 목까지 채우고 있는 꼴을 본 키미히로가 손을 뻗었다.
 “단추 하나 정도는 풀어도 돼.”
 “명색이 도메키 선배 결혼식인데 각 잡아도 괜찮거든?”
 “너 은근히 도메키 좋아한다?”
 “코하네가 있잖아, 코하네가.”
 “아무튼 잘 다녀와. 술 많이 마시지 말고.”
 “거기서는 술 안 마셔.”
 “그럼 누구랑 마실 건데?”
 키미히로의 물음에 세이라는 어깨를 으쓱이고 밖을 나섰다. 그의 손에는 청첩장이 들려 있었다. 청첩장 속 장소를 확인한 세이라가 택시를 불렀다. 묘하네. 그렇게 작게 중얼거린 세이라가 미소 지었다. 소중한 사람들의 결혼은 이렇게 기분 좋은 일이구나. 그런 생각을 하며 그는 등받이에 등을 기대고 있었다.
 예식장은 생각 외로 가까웠지만 옷을 여러 번 갈아입느라 시간을 지체한 세이라였다. 그는 도착하자마자 시즈카의 얼굴을 살폈다. 십여 년의 시간이 지나서일까. 시즈카는 예전 과 다르게 한결 어른스러워 보였다.
 “결혼 축하해요.”
 “고마워.”
 “선배가 전해달래요. 코하네를 행복하게 해 달라고.”
 “그래야지.”
 “코하네는 어디에 있어요?”
 시즈카는 세이라의 물음에 신부 대기실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세이라는 짧게 목례를 하고 대기실로 향했다. 아름다운 신부가 있을 곳으로.
 “코하네.”
 “세이라.”
 “근사하다.”
 “와타누키는 못 온 거지?”
 “그 선배는 늘 바쁘니까. 섭섭해?”
 “아니. 그건 아니지만 어쩐지 아쉬워서.”
 속상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는지 코하네가 상심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런 코하네를 들여다 본 세이라가 조심스레 손을 잡았다.
 “선배가 누구보다 네 행복을 빌어주고 있어. 나한테도 그렇게 전해달라고 하더라.”
 “와타누키가 행복하기를 나도 많이 빌고 있어. 그리고 세이라도.”
 코하네의 말에 세이라는 조금 손을 가늘게 떨더니 이내 미소를 한껏 지으려 애썼다.
 “걱정 마. 늘 그렇듯이 잘 지낼 테니까. 선배도 그렇고.”
 “결혼식은 보고 갈 거지?”
 “응. 아무래도 피로연까지는 힘들 것 같아. 미안해.”
 “아냐. 바쁜데 괜히 시간 내서 와 줘서 고마워.”
 “슬슬 가 봐야겠다. 안에서 봐.”
 “응.”
 세이라는 손을 흔들고 식장 안으로 들어갔다. 잘 꾸며진 식장 안 구석에 자리잡은 세이라는 신랑신부가 들어오기를 기다렸다.
 식은 꽤나 소박하고 무난하게 끝났다. 특별할 것 없는 결혼식이었지만 소중한 인연이 맺어지는 자리였기에 세이라는 친구로서, 후배로서 지켜보며 알게 모르게 행복해했다. 식을 마치고 돌아가려는데, 코하네가 세이라를 불렀다.
 “세이라.”
 “응.”
 “우리끼리 사진 한 장만 찍을까? 폴라로이드로 찍어서 와타누키에게 보여주게.”
 “그래.”
 그렇게 시즈카, 코하네와 사진을 찍고 나니 늦은 점심 시간이었다. 돌아가는 길은 걸어가기로 한 세이라였다. 둘과 헤어지고 나서 그는 가게로 향했다. 유코가 없는 유코의 가게로.
 “다녀왔어.”
 “뭐야?”
 “술.”
 가게에 도착하기 전, 대형 마트에서 산 술을 들고 온 세이라였다. 키미히로는 술을 보자 눈을 반짝였다.
 “세이라 짱!”
 “세이라!”
 “다들 기다리고 있었어? 밥 먹어야겠네.”
 마루, 모로, 모코나와 인사를 나눈 세이라가 그제야 가방을 벗었다. 목에 채워진 단추를 푸려다 키미히로를 힐끔 보더니 제 방으로 들어갔다. 고교 시절부터 쓰던 방은 늘 그렇듯 익숙한 냄새가 났다. 옷을 갈아입고 나오자, 키미히로는 이미 요리를 준비하고 있었다. 세이라는 딱히 묻는 대신 조용히 일거리를 찾아 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마루, 모로도 둘을 도왔다. 빠르게 식사 준비를 마친 그들은 자연스레 식탁 앞에 둘러앉았다.
 “잘 먹겠습니다.”
 “세이라 짱. 술 마실래?”
 “응.”
 세이라가 응하자, 키미히로는 술을 따라 그에게 건넸다. 한 잔을 쭉 들이킨 키미히로가 말했다.
 “정말이지, 세이라 짱하고 이렇게 술을 마실 날이 올 줄이야.”
 “나야 누가 봐도 어른이지만 선배는 아니잖아.”
 “하긴 그러네.”
 세이라는 여전히 10대의 모습을 한 키미히로가 술을 마시고 있는 모습이 낯설었다. 하지만 이미 유코의 힘을 물려받은 그는 세이라와 다른 존재가 된지 오래였다. 세이라는 술잔 속 술을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지체 없이 그것을 전부 삼키더니 손등으로 입술을 닦았다.
 “티슈도 있는데 왜 손등으로 닦고 그래.”
 “몰라.”
 키미히로는 유코의 표정을 살피더니 이내 잔잔한 미소를 짓더니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갑작스러운 행동에 세이라가 눈을 크게 떴지만 이내 다시 술을 따라 마셨다.
 “유코 씨가 보고 싶어서 그래?”
 그 물음에 세이라가 연거푸 술을 따르려던 손길을 멈췄다. 그리고 키미히로를 바라보다 작게 한숨을 뱉었다.
 “선배는 아닌 척 하지 마. 내가 바보인 줄 알아?”
 그렇게 말하다 문득 세이라는 고개를 저었다. 괜히 키미히로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든 게 썩 유쾌하지 않은 눈치였다.
 “미안해.”
 “왜 사과를 해. 내가 먼저 꺼낸 말이잖아.”
 “아냐. 뭐가 됐든 내가 미안해.”
 숙연해진 분위기에 마루, 모로가 눈치를 보았다. 그들은 세이라의 팔을 각각 붙잡고 연신 얼굴을 부비고 있었다. 마치 위로라도 해주고 싶다는 양 구는 마루, 모로를 보며 세이라는 작게 웃었다. 세이라는 나이를 먹고 어른이 된 이후에 종종 상대에게 웃어주었다. 그건 마음이 편해져서 그렇다기보다 오히려 불안했기에 다른 이들의 애정을 갈구하는 수단 중 하나가 아니었을까 하고 생각하는 키미히로였다. 천하의 세이라가 애정을 갈구하는 이유는 단 하나였다. 이치하라 유코. 오로지 그 때문이었다.
 “밥도 다 먹었고 이만 들어가 볼까.”
 키미히로가 일어나며 말하자 세이라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익숙하게 먹은 것들을 치우고 설거지를 하는 그를 보며 마루, 모로가 세이라를 도왔다. 그들은 어렴풋이 보인 세이라의 그늘을 눈치 챈 모양이었다.
 얼마 뒤, 키미히로는 유코가 사용하던 담배를 받았다. 완전히 유코의 힘이 그에게로 전해진 셈이었다.
 “세이라.”
 “응?”
 “같이 들어가도 돼?”
 “무슨 일이야?”
 “전해줄 게 있어.”
 “나한테?”
 의아한 표정으로 세이라는 모코나를 보았다. 모코나는 어쩐지 비장한 얼굴을 하고 있어서 세이라는 더 묻지 않고 방문을 열었다. 모코나는 세이라의 책상에 앉았고, 이윽고 말이 없었다. 문을 닫은 세이라가 그에게 물었다.
 “전해줄 게 어떤 거야?”
 -여전하구나. 세이라 짱.
 “유코 씨?”
 세이라는 주변을 돌아보았다. 방에는 자신과 모코나 뿐이었다. 이번에도 모코나가 제게 말을 전해주고 있는 것일까. 그는 저도 모르게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여전히 바쁜거야?”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아무튼 그래.
 “무리하지 말고. 당신은 술을 너무 많이 마셔대니까.”
 -걱정해 주는 거니?
 “과거 고용주를 걱정하는 건 어쩔 수 없는 거잖아. 나름대로 인연이기도 하니까.”
 -흐응.
 유코가 무슨 표정을 짓는지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여유로운 어른의 얼굴을 하고 있겠지. 예전처럼 능청스럽고도 짓궂은 얼굴을 하고 있을 게 뻔했다. 유코의 입꼬리가 올라가고 있을 것도 같았다.
 -미안해. 이제 모코나에게 말을 전해줄 일은 당분간 없을 것 같아.
 “뭐?”
 -아무래도 일이 좀 많아서.
 매번 유코는 그런 식이었다. 아무리 좋은 의도가 있는 일이어도 일단은 제 기분대로 움직이는 쪽이었으니까. 덕분에 유코가 있던 시절에는 이런저런 뒤처리를 하는 게 세이라의 몫이었다. 세이라는 입술을 짓물었다. 이대로 유코와 다시금 연락을 주고받을 수 없게 된다면, 기약 없는 날들을 기다려야만 한다면 자신은 어떻게 해야 할까. 짓문 입술 사이로 흐느낌이 새어나왔다.
 -세이라 짱?
 “유코 씨.”
 흐느끼는 목소리에 유코도 꽤 놀랐는지 목소리가 높아졌다. 세이라는 알고 있었다. 가지 말라고 말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도, 유코가 완전히 제게 마음을 주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것도. 그렇지만 이대로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면 평생을 후회로 살게 될 거라는 것도 너무나 명백했다. 흐느낌을 억누르며 세이라가 말을 이었다.
 “유, 코씨.”
 -응.
 “유코 씨. 유코 씨!”
 애절하게 유코의 이름을 부른 세이라는 결국 큰 소리로 울음을 터뜨렸다. 한참을 울더니 이윽고 자그마한 목소리로, 유코만 들을 수 있을 만큼 목소리를 죽여 토로하듯 뭔가를 이야기했다. 갑자기 들려온 울음소리에 키미히로가 놀라 방문을 열었을 때는 세이라가 바닥에 이마를 부딪치며 오열하고 있었다. 키미히로는 세이라를 붙잡고 다독이기 시작했고, 그에 모두가 세이라를 붙들고 등을 토닥여 주었다. 가게 일원들의 손길을 받은 지 시간이 오래 지난 뒤에야 세이라는 울음을 멈출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