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플스토리 / 매그너스 × 르네
“누나는 내가 남자로 안 보여?”
라고, 막 내 키를 넘어가기 시작한 남자아이가 말했다.
실상을 말하자면, 나는 어린 아이를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다. 싫어하지도 않는다지만 그들을 보살피고 사랑하며 돌보아 낼 여력은 없다. 나 자신을 다루는 것조차 피로하고 기운 빠지는 고요한 생활 속에, 대체 무슨 권리로 인생을 하나 더 집어넣고 인형처럼 팔을 쥔단 말인가. 그런 것은 무책임하다, 그런 것은 무심하다.
그러니까 이 남자애는, 내가 키운 게 아니다.
말하자면 방문객, 어찌되었든 손님. 손님이라기에는 너무 지속적이고, 그렇지만 결국 들렀다 갈 찰나의 바람일 뿐으로, 나는 언제나 미지근하고 무감각하게, 용족이라는 생물의 성장기도 결국 그렇게까지 긴 것은 아니로구나, 하고 여길 뿐이었다.
하지만 아이는 그게 제법 중요한 모양이었다. 아주 한참 전부터인가, 매일같이 제가 자란 만큼을 나에게 과시하고 싶어 했다.
나는 언제나 늘 그것에 차이를 느끼지 못했지만......
“남자 아이지, 너는.”
“그런 뜻이 아니야!”
뺨을 붉히며 소리 지르는 목소리는 날카롭고, 내 것보다 훨씬 커다랬고, 그럼에도 어딘가 으른다기보다는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내는 비명소리 같은 면이 있었다.
그는 언제나 단 한 번도 위협적이지 않았으니까, 적어도 나에게 있어서는.
남자아이의 이름은 매그너스. Magnus라고 쓰고 위대한 자라는 뜻을 품은 원대하고 커다란 이름. 이름의 의미를 담듯이 아이는 언제나 자신감 있고 용감한 얼굴로, 무모할 정도로 모든 곳을 헤집고 다니고는 했다.
나는 그를 맥이라고 불렀다. 앞 글자에서 세 개만 따 온 발음으로, 꽤 그렇게도 불린다고 하는 애칭을 읽고 관대하게 내려 주는 허가를 받았다. 아이는 자존심이 강했으니까, 그에게 묻지 않았다면 화를 냈었을지도 모르지.
사실 잘 모른다.
다른 사람의 마음은, 특히나 복잡하고 섬세한데다 감정적으로 솔직하기까지 한 어린아이의 속마음은 알아차릴 수 있을 리가 없다. 왜냐하면 나는 내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고, 나 자신도 다스릴 수 없고,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도 모르는 채로, 마치 책을 읽듯 필요한 것들을 몸 안에 채워 넣을 뿐이니까.
내가 처음부터 이런 사람이었다는 소리는 아니다. 만일 그랬더라면 나 자신에게 필요한 것들을 외워 집어넣는 시늉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필사적으로 부서진 부분을 수복하려, 최대한 이전과 같은 생활과 안식과 평온을 영위하고 있었다. 이전에 누리던 감정과 평온함과, 정상적인 모든 것들을 위하여...
잘 되지는 않았다.
나는 이상해졌다. 명명백백하게, 나는 고장난 로봇처럼 되었다. 이 일상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나는 사랑하던 모든 것도 갈 곳도 잃어버린 채로, 백색의 새처럼 헤매면서도 계속해서 숨을 곳을 찾고 있었다.
어째서 주위에 용족이 산다는 것을 알았으면서도 그 곳에 터를 세웠는지는 모르는 일이다. 생필품 따위가 부족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들과의 사이가 좋은 것도 아니었다. 용족들은 이방인인 나를 몹시 경계하며 그 뿔과 날개, 꼬리 따위가 없는 괴이라 수군거렸다. 누군가는 마녀라고 불렀고ㅡ그래서 나는 마을과 먼 곳으로 떠밀리듯 걸음을 옮겼다.
왜 거주를 옮기지 않았는지는, 나는... 나는 내가 있던 행성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어쩌면 그럴 수도 있었다, 굳이 이 행성일 필요조차도 없었다. 그러나 나는 이 행성과 내가 사랑했던 것들이 있었던 곳과의 희미한 연결고리에, 어쩌면 향수를 느끼고, 그 정도의 아주 얕고 희미한 추억으로만 겨우 안도할 수 있었던 것이리라.
분명히 내가 사랑하는 것들이 없는, 내가 기억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사랑하는 곳을 바라본다면 나는 더 망가지게 되었을 테니까......
그러나 나는 언제든 떠날 수 있었다. 나의 흔적은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아닌, 그저 그런 수준으로만, 마치 흙 위의 살짝 패인 자국 같은, 물결과 바람에 쓸리고 지워질 그런 것으로만 남았으리라.
나는 내가 사랑하던 행성을 마주보는 것을 괴로워했지만, 언젠가는 그것을 직면해야 한다는 일을 알고 있었다. 그러니 분명 나는 오래 머물지 않고, 깊은 휴식의 뒤에 다시 걸음을 옮겼으리라.
확실한 것은, 어린 용족 하나가 청소년이 될 정도의 시간까지 머물 생각은 없었다는 것이다.
인간으로 치자면 대여섯 살의 남자아이가 열 여서일곱이 된 셈이다. 나의 특수성을 생각해 보았을 때 십 년이라면 그다지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용족의 수명은 인간보다 훨씬 길었고, 그런 만큼 내가 머문 시간은 정말로 제법 긴 시간이 되고 말았다.
마음에 걸렸다. 매일같이 찾아오는 남자아이가... 작별인사 없이 떠나는 것을 주저했다, 작별인사 그 자체를 주저했다, 작별을 주저했다... 왜냐하면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작별인사와 함께 떠났고, 내가 용인하지 못한 작별을 했고, 그래서 사라진 채 나만 남겨 놓았으니까.
언젠가 다시 만날 수 있다는 말은 위로가 되지 않는다. 나는 다시 만날 수 있는 시간까지 무너진 마음을 회복해내야 했다. 그건 막막하고 무리한 난제 같았다.
그런 기분을 다른 사람에게 겪게 하고 싶지 않았던 것은 내가 아마도 덜 회복되었기 때문이었으리라. 어린아이는 무슨 일이든 금방 잊어버리고 만다지만, 그 때 느낀 감정은 영혼에 남을 테니까.
언젠가는 끊어내야 했다, 나는 언젠가는 떠나야 했다... 그러나 그러지 못한 채로, 중첩된 기억의 무게만이 이별의 말을 꽉 짓누르고 있는 채로, 나는 소속되지도, 떠돌아다니지도 못한 채 조용한 한 구석의 이방인으로 머물 뿐이었다.
“난... 난 이제 누나보다 키도 더 큰데.”
“그렇구나.”
“또 그, 봐, 목소리도 막 낮아지고... 그치? 나 변성기 온 것 같지?”
보기에는 더 클 것 같았다. 아이는 확실히 하루가 다르게 자라가고 있었다. 나는 물만 주면 자라나는 기다란 버섯을 떠올리며 도드라진 목울대를 바라보았다.
그는 몹시 건강해 보여서, 나는 문득 쓸쓸한 기분이 들었다. 하나의 어른으로 인정받고 싶어 안달하는 모습이 이별의 준비를 속삭이는 것 같았다. 언젠가 네가 정말로 어른이 되면, 그 때는 떠나도록 해야지, 네가 아프지 않게......
나는 그런 생각만을 하고 있었다. 매그너스는 한참을 입을 삐죽거리더니 정말 토라진 얼굴을 하고 고개를 휙 돌리고 말았다, 내 표정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건지.
긴 의자에 푹 앉아 넓은 팔걸이에 엎드린 뒷모습이 털을 세운 어린 고양이 같아 보였다. 확실히 모습만 보면 성년으로도 착각할 만 하겠구나 싶지만, 하는 행동을 보면 여전히 어리광을 부리는 아이다.
“맥.”
“......”
매그너스는 대답하지 않았다.
나는 그의 등을 쓰다듬으며, 가만히 부드러운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뼈대는 단단하지만 덜 자라, 아직 전사라고 부르기에는 낭창하고, 그렇다고 어린 아이라고 하기에는 커다란 남자아이. 또래 중에서 자신이 훨씬 크다고 말하지만, 나는 알 길도 없다. 높아져 가는 눈높이를 바라보며 그렇구나, 하고 생각할 뿐이다.
“맥.”
아직은 어린아이니까.
아직은 어린아이니까 더......
“.....왜.”
나는 토라진 매그너스의 머리카락을 가만히 어루만졌다.
언뜻 빳빳하고, 윤이 도는 갈가마귀 색의 머리칼이, 붓끝처럼 손에 스친다. 나는 가만히 고요를 느끼며, 매그너스를 달랠 만한 말을 곰곰이 생각했다.
“...또래 여자아이에게 인기가 많을 것 같아 보여.”
“뭐야, 그게......”
말로는 투덜거렸지만 꽤 마음에 드는 말이었는지, 매그너스는 눈매를 누그러트리고 고개를 살짝 들고, 그러고는 나를 슬쩍 바라보았다.
나는 그저 어쩐지, 그것이 사랑스럽다고 생각하여, 손끝으로 머리칼을 쓰다듬고......
누나는 정말로 내 마음이라고는 하나도 모르는데.
그런 말을 듣고 싶은 게 아니다, 나는 또래 여자아이들에게는 하나도 관심이 없다.
왜냐하면 그 누구도 누나만큼 빛나지 않고, 덧없어 보이지 않고, 사랑스러워 보이지 않았으니까.
그래도 어쨌든 객관적으로는 훌륭하다 이거지, 나는 그걸로 일단 만족하기로 하고, 누나는 어떤 남자를 좋아하는지 물어보려다가, 그 얼굴을 보고는 그냥, 아무것도 말하지 않기로 했다.
누나는 내 머리를 쓰다듬고 있었다, 부드러운 손끝이 내 뻣뻣한 머리카락을 사락사락 헤치고 있었다. 나는 분명히 그것도 좋아했지만, 사실은 머리를 쓰다듬는 그 행위 자체보다 더 좋아하는 것이 있었다.
언제나 표정이 옅고, 희미하고 초연한 얼굴에, 아주 야트막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나는 그 미소에, 정말로 가슴이 뛰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