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희왕 5D's / 키류 쿄스케 × 후카세 미나기
이것은 후카세 미나기가 후도 유세이와 함께 다크 시그너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새틀라이트로 돌아갔을 때 있었던, 두 연장자의 식상한 재회에 대한 이야기이다.
미나기는 뒤통수에서 느껴지는 저릿저릿한 감각과 함께 눈을 떴다.
주변이 어둡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지만, 희미하게 느껴지는 먼지와 콘크리트 특유의 냄새가 이곳이 실내라는 걸 알려주고 있었다.
달빛도 별빛도 들어오지 않는 완벽한 어둠 속. 제 시야가 희미한지 또렷한지도 판단할 수 없어 계속해서 눈만 깜빡이던 그는, 빠른 발걸음으로 다가오는 발소리를 느끼고 몸을 일으켰다.
“누구…!”
이런 낯선 곳에서 말 한마디 없이 다가오는 상대가 수상하지 않을 리 없다. 미나기는 상대가 먼저 손을 쓰기 전에 선수를 치려했지만, 뜻밖의 장애물이 그의 발목을 잡고 말았다.
“큭!”
땅을 박차고 허리를 펴는 순간 무게중심을 잃고 쓰러진 그는 그제야 제 손발이 묶여있다는 걸 눈치 챘다. 꽤나 요란하게 바닥에 처박힌 미나기는 고통에 몸부림 칠 틈도 없이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그를 찾아온 낯선 손님은 그가 일어나는 걸 가만히 보고 있지 않았다.
“이런, 가만히 있으라고 미나기. 이제 막 깨어났을 뿐이잖아? 아직 어지러울 텐데.”
“뭘, 안다고 아는 척을…!”
악에 받쳐 소리치던 목소리가 어중간하게 끊겼다. ‘아.’ 짧은 탄식과 함께 호통 치던 걸 멈춘 미나기의 머릿속에 누군가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아까 눈을 뜨기 전 보았던 풍경은.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어둠 너머를 바라보던 그는, 익숙한 눈동자 한 쌍이 자신을 내려다보는 걸 확인하고 숨을 삼켰다.
“다시 한 번 인사할까? 오랜만이야, 미나기. 그동안 날 찾아다니느라 고생 좀 했지?”
“쿄, 스케?”
“그래. 네가 그렇게 찾아다니던 키류 쿄스케야.”
어둠에 적응된 눈동자가 잡아낸 상대방의 모습은 그리운 이의 형태를 하고 있다. 미나기는 희미한 빛을 등지고 있는 커다란 실루엣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말투도, 목소리도, 생긴 것도, 서있는 모양새도 전부 제가 기억하는 키류 쿄스케 그 자체다. 하지만 그에겐 어딘가 이상한 구석이 있는 것도 사실이었지. 붉은색 마크와 새까맣게 타들어간 흰자위를 보며 고개를 기웃거린 미나기는 혹시 제가 꿈을 꾸는 건 아닐까 싶어 입 안 살을 깨물어 봐야 했다.
“오랜만에 만나자 마자 다짜고짜 기절시켜 미안해. 너도 알지? 내가 주먹을 쓰는 것에는 거리낌이 없어도 너에게는 손찌검 한번 하지 않은 걸. 그러니 이해 해 줄 거라 믿고 있다고. 이건 어쩔 수 없는 수단이었다고 말이야. 애초에 한 번에 기절했으니 그리 아프지도 않았을 것 같지만?”
“뭐라는 거야 미친놈이….”
“푸핫! 그 터프한 말투도 여전하네. 하나도 안 변해서 안심했다고. 흐흐흐.”
실성한 사람 마냥 웃음을 흘리는 그는 한 손으로 간단히 미나기를 일으켜 세워 벽에 기대앉게 해주었다. 제 몸을 마음대로 옮겨주는 팔을 뿌리치지 못하고 멍하니 보고 있던 미나기는 홧김에 손이라도 물어뜯을까 싶어 시선을 돌렸다가, 있어서는 안 될 문장이 있는 팔뚝을 보고 두 눈을 번쩍 떴다.
“…너….”
“응?”
“팔에, 그거….”
“음? 아아. 이거….”
킥킥킥. 계속해서 흘러나오는 웃음을 겨우 삼킨 키류는 미나기에게 바짝 붙도록 다가와선 제 팔의 문장을 보여주었다.
“그래. 나는 다크 시그너 중 한명이야. 놀랐나?”
“놀랐나, 라고? 지금 그걸 말이라고…!”
“지옥에서 돌아왔지. 녀석들에게 복수하기 위해서. 나를 배신한 죗값을 받아내기 위해서. 이 수밖에 없었다고. 그리고 너도 좋지 않나? 날 다시 한 번 볼 수 있게 되었잖아. 날 그렇게 찾아다녔으면서, 보고 싶었다는 말 한마디 안하는 건 너무하지 않나?”
“복수…? 죗값…?”
미나기는 어이가 없다는 듯 그의 말에서 몇 가지 중요한 단어를 중얼거리고 탄식했다. 먼저 사고를 쳐서 잡혀간 것이 누구인데, 다른 아이들, 유세이와 잭과 크로우는 어떻게든 키류를 구하기 위해 노력했었는데. 적반하장도 유분수이지.
“유세이는 널 위해서….”
“하, 그래도 동생이라고 네가 변명하는 건가? 어차피 친동생도 아니잖아. 혈연도 아닌 동생이 애인보다 소중해?”
“키류 쿄스케!”
“그래. 그래. 그리웠다고 이 호통. 나도 보고 싶었어, 미나기. 루드거 녀석이 모든 게 시작되기 전까진 구 모먼트에 짱박혀 있지 않으면 곤란하다고 해서 만나러 가지도 못했는데. 이젠 됐어. 이렇게 내게 돌아왔으니.”
마지막 순간 자신을 보며 진심으로 오열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착각과 분노로 잘못된 복수심을 품게 된 몸이라도 연정은 떨쳐낼 수 없는 걸까. 키류는 진심으로 미나기만큼은 다른 팀원들과 달리 자신을 배신하지는 않았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후우.”
벅찬 한숨에는 슬픔이나 후회 같은 건 들어있지 않았다. 차갑게 식은 두 손으로 가볍게 미나기의 양 뺨을 쓰다듬고 이마에 입을 맞춘 키류는 뒷걸음질로 물러나선 망토의 매무새를 정리했다.
“유세이 녀석, D휠이 망가진 덕분에 목숨은 건졌지만 다음은 반드시 끝장을 내줄 거라고.”
“뭐? 그게 무슨…. 너, 뭘 하고 온 거야…?!”
“뭐긴 뭐야. 듀얼리스트가 듀얼로 복수를 하지 않으면 어떤 방식으로 복수를 하겠어? 너무 걱정 말라고, 아직은 살아있으니까.”
“걱정 말라고?! 대체 어떻게 듀얼을 해야 D휠이 망가지는 건데?!”
도대체 제가 기절해있던 사이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아니, 애초에 자신은 얼마나 정신을 잃고 있었던 것이지? 유세이를 따라 새틀라이트로 돌아와, 크로우를 만나고, 다 같이 잠들었던 그 날로부터. 지금은 며칠이나 지났단 말인가.
“시간은 많아. 녀석과 다시 듀얼하고 결판을 내게 될 때까지. 우리 둘이서 잘 지내보자고. 복수가 끝나면 뭘 할까. 망해버린 이 세계에서 새틀라이트를 넘어 어디든 가볼까? 만족할 수 있을 때 까지 말이야.”
“웃기지 마, 당장 이거 풀어!”
“나도 그러고 싶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니 거절하겠어. 시간이 되면 싫어도 자유롭게 해줄 테니 기다리라고. 나는 잠깐 나갔다 올 거니까.”
‘금방 돌아올게.’ 싸늘한 미소와는 달리 상냥한 목소리로 중얼거린 키류는 그렇게 보이지 않는 어둠 너머로 사라졌다.
‘쿄스케!’ 멀어져가는 그림자를 붙잡기 위해 소리치려던 미나기는 목소리 대신 마른기침만을 내뱉으며 몸을 웅크렸다.
추운 곳에 오래 있었기 때문인지 몸이 말을 안 듣는다, 아니면, 뒷목을 가격당하고 바닥에까지 처박힌 몸이 이제야 고통을 호소하는 걸지도 몰랐다. 지친 몸을 진정시키기 위해 숨을 몰아쉬던 미나기는 어떻게든 팔을 묶어놓은 끈이라도 끊어보기 위해 바르작거리다가, 이내 등을 벽에 기댄 채 눈을 감았다.
‘유세이….’
그토록 찾아다니던 이를 만난 것은 기쁘지만, 상태가 저래서야 기뻤던 마음도 저 멀리 달아날 수밖에 없다. 갑자기 나타나 자신을 납치하질 않나, 한때의 동료이자 제 남동생 되는 이를 공격하지 않나…. 말이 안통하는 것도 정도가 있지, 이래서야 허공에 대고 소리치는 것과 별반 다를 것도 없는 모양새였다.
‘말려야 해. 유세이가 다시 한 번 위험해 지기 전에, 쥐어 패서라도 말려야 해.’
유세이도 키류도 제게 있어선 우열을 가리는 게 힘들 정도로 소중한 사람이다. 하지만, 두 사람 중 지켜야 할 사람을 골라야 한다면 단연 유세이를 택해야 한다. 자신은 그의 누나이니까. 피는 이어지지 않았어도, 그날 비상탈출용 캡슐 안에서 함께 살아남은 이후로부터 자신들은 한 배에서 나온 남매나 다름없다 생각하며 서로를 대했기에. 형제자매가 서로를 지켜내는 건 당연한 일이고, 자신은 유세이의 누나니까, 유세이를 지키고 키류를 말려야 한다.
물론, 키류에게 무슨 문제가 생긴다면 제가 가만히 있지는 않을 것이다.
자신은 유세이의 누나이기도 하지만, 키류의 연인이기도 했으니까.
제가 구해야 할 게 유세이라면, 함께 있고 싶은 상대는 키류였으니까.
“젠장…!”
마주친 그 순간 너무 놀라서 아무 짓도 못하고 기절당한 게 억울하다. 조금만 정신을 차렸다면, 상황이 달라질 수도 있었을 텐데.
되돌릴 수 있는 과거를 곱씹으며 화풀이하듯 ‘젠장’이라는 말만 중얼거리던 미나기는 아직까지 통증이 남은 머리를 진정시키기 위해 못이긴 듯 잠에 빠져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