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드림으로써 드래곤네스트 공식 세계관과 설정, 타임라인이 다른 부분 존재함

* 원작 세계관이 아닌 현세 세계관을 중심으로 (드림이 심하게 묻은) 원작을 동시에 보여주는 시점 전개 주의

* 캐릭터의 성별에 관련해서 궐녀厥女(그녀)/궐자厥者(그) 구분할 것 없이 전부 ‘그’ 하나로 호칭을 통일하기 때문에 드림주의 성별과 관계있는 호칭 아님 주의(?) 문체도 본편의 문투 문제이긴 하지만 厥女 나 厥者 나 쓰기 싫어해서 그럼

* 벨스커드 드림으로 원작/작중 호칭이 벨스커드라고 있지만, 개인적으로 드림 설정+캐릭터의 인간관계&가족 설정 등등의 추가와 동시에 벨스커드가 이름이 아니기 때문에 이름 추가로 ‘베르데스’로서 커플명이 벨아르인 베르데스×아르망임

* 벨스커드(드림캐)의 인간관계(?)로 추가된 제레인트의 이름은 제레미아 제레인트(원작 제레인트)임

* 베르데스=원작 게임 내 그 벨스커드(드림캐)라는 소리

* 비베온(경)=벨스커드 준 남작≠벨스커드라는 소리

* 베르데비아스≠베르데스라는 소리

* 벨스커드가 엄청 우는(?) 눈물 드림입니다(?)





Dioptase


 살다 보면 오래도록 남을 강렬한 기억 몇 개쯤 간직하곤 한다.

 책장을 넘기고 있던 벨스커드의 손이 멈춘 것은 오래전이었다. 제레인트는 그것을 알고 있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밖에는 장대 같은 비가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나무 창틀에 부딪힌 빗방울들이 묵직하고 요란한 소리를 내며 튀어 올랐다. 멍하게 창밖을 바라보던 벨스커드가 혼잣말처럼 말했다.
 “대체 왜 그런지 잘은 모르겠지만, 자꾸만…… 아직도 알테이아라는 그 기억의 흔적들이 계속 흘러들어와. ……그 기억들이 현재의 기억들과 섞여버려서, 그가 죽었을 때도 이렇게 비가 내렸던 것 같다는 생각도 들어.”
 그것을 마지막으로 벨스커드는 입을 닫았다. 벨스커드를 바라보던 제레인트는 한참 만에 입을 열었다.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그 사람은 너를 많이 아꼈다는 것 하나뿐이다. 베르데비아스 벨스커드.”





 먼 곳에서 들려오던 시끄러운 소리가 잠을 깨웠다. 무거운 눈꺼풀에 갇혀 허우적거리던 끝에 뒤늦게 그 소리가 전화 소리임을 깨달았다.
 정신은 어느 정도 깨어났지만,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덕분에 한참 만에 겨우 손만 뻗어 더듬거리며 전화를 찾아들었고, 겨우 귀에 갖다 대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그렇지만 어째서일까, 아직도 낯선 느낌이 드는 건.
 “……여보세요.”
 “지각하고 싶지 않다면 빨리 일어나도록! 눈 떠라!”
 목소리가 말하는 대로 힘겹게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 올렸지만, 그것이 전부였다. 겨우 뜬 눈으로 멍하게 천장만 바라보았고, 이전까지 멍하니 몽롱하게 유영하고 있던 꿈과 달리 현실의 집이라는 걸 깨닫는 데는 제법 시간이 걸렸다.
 “……눈 떴어.”
 “눈만 떠서 되는 게 아니잖나! 빨리 일어나라.”
 도저히 꿈이라 여겨지지 않을 정도로 현실감각이 엄청났던 꿈의 여파에서 벗어나지 못해 천근만근 무거운 몸을 겨우 일으켜 침대를 벗어나는 순간, 갑자기 쏟아지는 햇빛에 반사적으로 눈을 감았다. 어지럼증까지 몰려왔지만, 간신히 벽을 잡고 몸을 지탱하자니 그제야 정신이 조금씩 돌아오는 것 같았다.
 “……! 자냐!?”
 정신이 돌아오는 것 같다고 느낀 지 얼마나 되었다고 그새 또 정신을 놓았던 건지, 귓가에서 들리는 날카로운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 절로 시계를 확인했다. 다행히 10분 안에 어떻게든 준비를 다 끝낼 수 있다면 아슬아슬하게 지각하지 않을 수 있을 정도의 시간이 남아있었다.
 “정신 차렸어! 금방 준비하고 나갈 수 있을 테니까 끊어!”
 “그리고 나올 때 그냥 나오지 말고 열쇠랑 지갑, 손수건, 보조배터리도 잊지 말고 잘 챙겨서 나오도록.”
 “아…… 알았어.”
 “잊지 말고, 정신 놓다가 빼먹지 마라.”
 전화를 끊고 지끈지끈한 머리로 냉장고에 기대 물부터 마셨다. 병을 반쯤 비우고 나니 집 안 꼴이 제대로 눈에 들어왔다. 옷가지가 바닥에 널려있고, 책상 위에는 읽다가 만 책들과 자료들로 가득한 종이들이 엉켜있다.
 ……갔다 와서 치우자.
 어쩌면 몇 주 전부터 그런 생각으로 계속 미루고 내버려 두면서 바쁘게 지냈던 것 같다고 여겨졌지만, 정말로 시간이 촉박한 마당에 더 신경 쓸 수가 없어 빠르게 물만 끼얹는 샤워와 옷을 아무거나 골라 입는 준비를 마친 뒤 현관문을 나섰다. 물론 전화에서 들었던 잔소리로 열쇠와 지갑 등 챙길 것도 다 챙겼고.

 숨을 크게 들이켜고 내쉬었다. 긴장을 풀기 위한 행동이었는데 도리어 손발이 더 차가워졌다. 명치가 꽉 막힌 것이 체한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를 생각해서라도 자신 역시 일어나서부터 아무것도 먹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실제로 체한 것은 아닐 터.
 분명 이상한 꿈을 꾸기 시작하게 된 날부터 계속 그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벨스커드의 상태는 줄곧 그랬다.
 “……왔나.”
 아침이라고 하기엔 늦고, 오후라고 하기엔 이른 시간이었지만 막 잠에서 깨어나 허둥거리며 준비를 겨우 끝내고 뛰어온 모습의 그는 언제나 그랬듯이 옷만은 말끔한 케이프 드레스 차림이었다. 그런 모습은 어쩐지 자꾸만 묘한 꿈을 떠올리게 하기 충분했다. 시대 배경이 판타지가 섞인 중세, 혹은 고대를 배경으로 한 듯한 알테이아 대륙이라던 꿈속에서 본 복장에나 더 어울릴 법한  옷은 그를 볼 때마다 기분이 싱숭생숭해지며 착잡한 마음을 느껴야만 했다. 대체 뭐지. 왜 자꾸만 이상한 생각이 드는 것 같은 거야.
 “허억, 많이 기다렸어?”
 “그걸 말이라고.”
 “으으…… 미안합니다, 진짜. 안 그래도 요즘 자꾸만 잘 때마다 이상한 꿈을 꾸는 것 같은데, 그게 너무 힘들어서…….”
 “꿈?”
 아르만도시에게서도 이상한 꿈을 꾸는 것 같다는 말이 나와 한쪽 눈을 씰룩이던 벨스커드는 그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괜히 자신이 꾸던 그 꿈이 떠오르고 어쩐지 연관이 있을 것 같다는 허무맹랑한 생각이 들어서 반응을 해버렸지만, 그는 아무런 신경도 쓰지 않는 것 같다.
 “으음…… 이상한 꿈인 것 같기는 한데 정작 일어나서 떠올려보려고 하면 자꾸만 누가 기억을 일부러 지워내는 것처럼 금방 잊어버리고 도저히 떠올릴 수도 없어서 무슨 꿈인지 알 겨를이 없지만 말이야. 그래도 요즘 하도 피곤해서 그런 거겠지.”
 그런 말을 하는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괜히 머리가 다시 또 지끈거리는 느낌에 절로 인상을 찌푸려버렸다. 대체 무슨 일인지.
 “……너무 신경 쓰지 마라. 꿈은…… 그저 단순히 꿈일 뿐인 걸 테니.”
 “응? 뭐야, 벨이 웬일로 이런 다정한 소리도 다 하고? 좀 걱정했어?”
 “하…… 뭔 말을 해도 꼭……. 쓰레기다운 발상 같은 건 하지 말라고 몇 번을 말하나. 너를 걱정 같은 걸 해서 뭘 어쩌게?”
 안 보면 그나마 나아질 통증이라 자주 그랬듯이 이번에도 결국 부러 못난 소리나 내며 신경질을 부리듯이 시선을 거두고 고개를 돌리자 눈 안에서 아른거리던 하얀색 머리카락과 징그럽게 보일 정도로 하얀 눈의 여자가 사라졌다. 그래. 진짜 말도 안 되는 일이 틀림없다.
 아무리 꿈속에서 나오는 사람들이, 그 아르망이 현실의 아르망 아르만도우시와 이름이 같다고 해도, 모습이 똑같다고 해도 꿈은 꿈일 뿐이다.
사람의 눈이 자연적으로 그렇게 소름 끼칠 정도로 징그러운 하얀색 홍채의 눈일 리가 없어서, 단순한 개꿈 정도로만 치부하자고 넘기는 것도 달 단위로 시간이 흘렀지만 그러지 않고서야 미치지 않고 멀쩡히 지낼 수 있을 것 같지가 않다.
 꿈속의 존재가, 꿈의 존재감이 너무 강하면 이렇게 될 수도 있는 걸까?
 벨스커드는 입을 꾹 다물고 속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것 같은 알 수 없는 열기에 의해 답답해지는 기분을 토해내지 않고 말없이 발을 빠르게 옮겼다.
 “그렇다고 먼저 가기냐! 어휴, 하여간 사람에 대한 배려라고는 기본만 겨우 찍을까 말까 하는 저 싹수를 진짜 이렇게 참고 넘길 수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겠다.”
 “시끄럽고 빨리 오기나 해라. 지각하고 싶나.”
 “어차피 벨이랑 같이 가는 거니까 별로 상관없을 것 같은데?”
 “……아르만도우시 양(Xanim Armandawşi), 한 번만 더 상황에 맞지 않게 필요 없는 소리를 하다가는 그렇게 흘려보내는 시간이 아까워져 저도 모르게 버려두고 혼자 가게 될 것 같으니 말은 그쯤 하도록 하죠.”
 극진하게 정중한 예의를 갖춘 말로 ‘쓰레기다운 쓸데없는 소리 하다간 버리고 먼저 가버리겠다’는 뜻을 말하자 그제야 덩달아 심각해지듯이 행동이 빳빳하게 굳어진 아르만도우시에게서부터 빠릿빠릿한 대답이 나왔다.
 “예, 알겠습니다! 벨스커드 후작님!”
 그러나 그 어떤 말이나 꿈보다도 제일 신경에 거슬려버리는 대답 때문에, 그의 말이 몰고 온 충격 때문에 벨스커드는 눈앞이 하얗게 점멸되는 기분을 느끼며 일순 얼어버렸다.
 “……뭐라고?”
 “어? ……뭐가?”
 “……벨스커드 후작?”

‌* * *

 벨스커드 후작은 처음부터 후작이 아니었다.
 그는 단순히 하급 귀족이었던 위치에서부터 눈부신 실력으로 후작까지 된 사람이었다.
 그러나 후작으로도 그의 행보는 멈추지 않았고, 전설적인 왕국 기사라는 호칭까지 얻게 된 베르데비아스 벨스커드는 항상 몸을 혹사하듯이 굴려 대며 기어코  블랙드래곤 레이드까지 결성하게 되었다. ……그러나 결국 그 블랙드래곤 레이드에서 전사하게 되었지만, 그는 마지막까지 훌륭한 인물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벨스커드 후작은 베르데비아스가 아니었다.
 베르데비아스는 단순한 하급 귀족인 벨스커드 준 남작도 아니었고, 베르데스가 될 수도 없었다.
 벨스커드란 성을 가진 단순한 하급 귀족인 준 남작 역시, 처음부터 준 남작이었던 것도 아니었다.
 처음부터 정말 단순하고 평범한 평민이었던 비베온의 시작은 후대에 벨스커드 후작을 만들어내게 된 아이들의 아버지였을 뿐, 그것마저도 자신의 힘으로 일궈낼 수 있었던 결과물이 아니었다.

 “아르망! 왔으면 왔다고 연락이라도 주던가, ……대체 언제 왔었던 건가?”
 “……넌 정말 날이 갈수록 점점 잘도 변해가는구나. 정말 빠르게도 변했어.”
 “오랜만에 봐서 하는 소리가 고작 그런 소리인가?”
 “그럴 수밖에. 내가 아직도 기억하는 너는 벨스커드 준 남작도, 비베온 경도 아닌 작고 어린 평범한 평민 비베온 소년일 뿐이니까.”
 “대체 언제 적 시절을 떠올리는 건지……. 보통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도 있는데, 40년이면 빠른 세월도 아닐뿐더러 일반 사람들은 충분히 변하고도 남는다네.”
 팔짱을 끼고 삐딱한 자세로 벽에 기대듯이 서 있는 하얀 머리카락과 하얀 눈의 아르망을 눈에 담은 벨스커드 준 남작은 반가움을 표하고 있었다. 정말 얼마 만에 다시 만나는지.
 그는 오히려 아르망의 말처럼 자신이 평범한 평민 소년이었을 때부터 봐 왔던 아르망의 모습이 그때와 전혀 변하지 않고 그대로인 점을 보며 감회에 젖은 듯했다.
 “진짜 엄연한 준 남작님이 다 되셨네, 비베온 경.”
 “그렇게 보인다니 다행이란 생각이 드는군.”
 “그보다 경의 아이들은?”
 “괜히 일부러 ‘경’이라고 하지는 말아주게. 그대에게만큼은 그렇게 불리고 싶진 않은걸. 아이들이라면 집에 있을 텐데…… 왜?”
 “흐응…… 그냥. 아이들이 태어났다고, 셋째도 태어나고, 잘 자란다는 소식까지 들었으니까 괜히 한번 보고 싶어서 와 본 거였지.”
 “……그런 소식들은 옛날 일인데, 그마저도 대체 언제 적 연락을 들먹이는 건지. 여전히 아이이기는 해도 이제 벌써 열 살이 다 되어가는 큰 녀석들이지. 첫째인 베르데비아스와 둘째인 베르데스가 쌍둥이로 열 살에 가까워지고, 셋째인 베르디오네가 일곱 살이니 말일세.”
 그렇게 말하는 벨스커드 준 남작의 뿌듯해하는 듯한 모습에 아르망은 눈을 가늘게 뜨고 재밌다는 듯이 바라보는 것 같다.
 “그러면 아이들 교육은 잘 되어가고 있고?”
 “교육?”
 “정식 오등 작에 오르는 귀족까지는 아니래도 준 남작이라면 작위 계승 정도까지는 되잖아. 아이들에겐 해당 사항이 없다고 한들 첫째한테 벨스커드 준 남작을 물려줄 생각이라면 교육을 해 둬야 하지 않겠어? 아무리 평민 신분 그대로라고 한들…….”
 “아, 그 건에 대해서 말하고 싶은 게 있었는데.”
 “나한테 그 교육을 맡기고 싶다는 말만 하지 마.”
 “……검술만은 어떤가?”
 “……하지 말라니까, 꼭 일부러 돌아서라도 기어이 할 말은 하는 거냐.”
 그렇게 말하는 아르망의 모습에 벨스커드 준 남작은 허허 웃으며 그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토닥이듯이 가볍게 두드리고 말을 이었다.
 “제발 좀 부탁하네.”
 “이게 부탁하는 사람의 행동이던? 손 치워라.”
 “그렇긴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자네만큼 믿음직한 선생을 찾기도 어려워서 더 그렇다네. 아무런 가능성도 없던 그 흔한 평민이었던 나조차도 지금 이렇게 준 남작이란 자리를 얻을 수 있게, 그에 어울리는 사람이 될 수 있게 훌륭하게 키워냈었지 않았나.”
 “……그렇긴 하지만, 나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안 하는 편이 좋아. 특히나 널 어렸을 때부터 키워줬다는 그런 말은 너무……”
 “그 말은 안 하고 있다네. 애초에 그걸 믿는 사람도 없기는 하지만…… 믿어도 큰일일 그런 이야기를 내가 떠벌리고 다닐 이유는 없지 않은가.”
 아무튼, 결국엔 아이들의 교육을 위한 선생이 되어달라는 부탁으로 주제를 다시 끌고 돌아온 벨스커드 준 남작은 아르망의 눈치를 보면서도 단호했다. 이미 그 말고는 다른 이를 생각하고 있지는 않다는 모습에 아르망은 한숨을 내쉬었다.
 “일단 애들부터 봐야겠지. 보고 결정할 테니까.”
 “그냥 지금 대답을 해주면 안 되겠나?”
 “가능성을 보고 결정할 거야. 너도, 내 눈에는 가능성이 보였기 때문에 그걸 보고 결정했었던 거고. 그리고 어차피 준 남작 정도는, 정식 귀족도 아니라 작위 계승이 된다고 한들 현재 준 남작의 선택 사항이니 아이들한테 물려줄 생각이 없다고 하면 상관없는 법이야.”
하지만 그렇게 말하던 아르망은, 아이들을 보자마자 누가 첫째고 둘째냐 묻는 것 외에 더는 말없이 벨스커드 준 남작을 향해 돈은 얼마냐 있냐는, 수락의 대답에 가까운 질문을 던졌다.
 “가능성이 보인다는 건가?”
 “사실 가능성은 첫째보다는 둘째이긴 하지만…… 그래도 쌍둥이니 그렇게 큰 차이는 없을 거로 생각해.”
 그 선택에 후회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후회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고, 둘째인 베르데스까지 그저 별달리 할 일이 없어 심심하다는 이유로 같이 아르망의 교육을 받은 것을 후회하지도 않았다.
 “벨─ 기껏 같이하자고 고집부려서 같이 수업 듣게 해줬더니 왜 이렇게 자주 탈주하는 거니.”
 “벨이라고 하지 말라니까…… 데스라는 애칭이 따로 있는데도 자꾸만 왜 굳이 그러는데?”
 “어머? 베르데스(Verdeath)에서 딴 데스(death)? 그런 의미로 지은 이름은 아니래도 좋은 의미로도 들리지 않는 걸 나까지 그렇게 불러야 쓰겠니.”
 “그래도 여자애 이름 같은 벨보다는……”
 “특별히 나 혼자만 불러줄 나만의 애칭이 되는걸? 싫은 거니?”
 “……별로. 마음대로 해.”
 후회할 일은 없었다.
 처음 봤을 때부터 눈에 띈 가능성을 지닌 둘째인 베르데스에게 가지는 아쉬움과 안타까움은 있어도 수업을 가르칠 때의 교육 참여도와 성실함에서는 첫째라는 사명을 가진 베르데비아스가 좋은 학생이었기 때문에, 첫째보다 둘째를 더 아끼고 눈에 띄게 애착하게 되는 일도 없었다. 크게 차이가 나는 것도 아니지만, 본능적으로 눈치가 빠른 어린아이는 어린아이인 건지 그걸 금방 알아챈 베르데스는 영악하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그 틈을 이용해 자주 아르망에게서부터 모든 관심을 끌어오게 했다.
 “벨! 네가 먼저 그렇게도 같이 하고 싶다고 같이 수업 듣게 해달라고했으면서 왜 이렇게 자꾸 도망치려는 거니?”
 “그야 아르망의 수업은 거의 스파르타인걸요? 힘드니까 어쩔 수 없어. 그래도 데스 정도는 자주 빠진다 해도 별로 상관없고.”
 “데비, 너마저……. 그래도 자신이 하고 싶다고 먼저 나선 이상, 자기가 한 말과 행동, 약속에 대한 책임은 져야 하는 거란다. 책임감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그렇게도 가르치고 있잖니.”
 “책임감 있는 사람이 되는 것 정도는 어렵지 않아.”
 “그러면 수업을 들어야 할 의무가 있는 학생에게 물을 책임감이 뭔지는 알겠지?”
 평범한 가정교사나 선생님과도 다른 사람, 가족이 아닌 사람, 친구와 비슷하지만, 친구가 아닌 사람.
 친구라고 할 만한 또래도 많이 없었기 때문에 인간관계라고는 가족과 고만고만한 마을 사람들뿐이었던 아이들에게 있어서 아르망은 새롭고 독특한 존재였다. 베르데스에게 있어서는 선생님이라는 경계도 흐릿했기 때문에 자신을 가르쳐 주는 선생님이나 그런 연장자가 아닌, 그저 자신을 향한 애정이 남다른 연장자라는 점에 있어서 더욱 마음과 애정을 쏟아붓게 되었다.
 “데스, 너는 왜 아르망한테 수업을 듣고 싶다고 했던 거야?”
 “그야 우리는 둘이서 하나인 쌍둥이니까. 네가 아는 건 나도 알아야 하고, 네가 모르는 건 나도 몰라도 되는 거야. 언제나 그랬듯이 누가 데비고 누가 데스인지 헷갈릴 정도로 똑같은 쌍둥이로 있으면 그걸로 되는 거야.”
 “하지만 준 남작 위라도 그걸 이어받을 수 있는 건 한 사람뿐인걸. 그리고 말은 그렇게 한들 네가 오히려 더 눈에 띄게 나와 똑같은 행세도 잘 안 하잖아. 아르망 앞에서는 더 그러면서.”
 “아르망은 달라.”
 둘이서 하나인 쌍둥이.
 자주 그런 말을 입에 달고 살면서 자신을 낳아주었던 부모마저도 헷갈리게 할 수 있을 정도로 서로 역할을 자주 바꿔서 지내기까지 하던 쌍둥이는, 모든 것을  공유하며 언제나 붙어 다녔고 자주 가족뿐만 아니라 타인에게도 그런 장난을 치기도 했던 아이들이었다. 아르망이라고 다르진 않았다.
 “아르망은 뭘 어떻게 해도 금방 다 알아차려 버리는걸. 아르망 앞에서는 전부 의미 없는 짓들이야.”
 “그렇다고 해서 너무 혼자 아르망 눈에 띄게 끼 부리는 거 아니냐고.”
 “누가 끼 부린대? 그리고 네가 나한테 그런 소리 하는 거 아니다?”
 “적어도 멀쩡한 원래 애칭이 있는 걸 내버려 두고서도 아르망이 널 ‘벨’이라고 부르는 걸 더 좋아하는 녀석이면서. 나만 해도 아르망 때문에라도 ‘벨’이라고 잘못 불렀다 하면 성질을 내면서?”
 아무도 그의 깜찍한 애칭인 ‘벨’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은 전혀 없었다. 심지어 같은 가족이자 쌍둥이인 데비에게까지 절대 허락되지 않은 아르망에게만 허락된 그만의 애칭. 벨.

 그 이후부터 벨스커드는 ‘벨’이라는 소리에 예민해졌고, 그걸 관대하게 넘어가고 참아낼 수 있는 사람은 언제나 단 한 사람뿐일 것이다.

‌* * *

 “벨, 정말로 괜찮은 거야?”
 장난식으로 불렀던 ‘벨스커드 후작’이라고 한 뒤부터 계속 딱딱하게 굳어 절대로 펴지지 않은 얼굴로 실습 중에도 내내 울 것 같이 표정이 일그러진 그의 모습은 꽤 걱정되었다. 평소엔 힘든 실습 때문에 중간중간 힘들다~ 어리광을 부려도 전혀 힘들어 보이지 않은 모습으로 ‘그러게, 힘들긴 하겠군.’ 같은 무성의한 빈말이라도 반응을 해주던 벨스커드였지만, 그런 반응조차도 나올 거라고 보이지 않을 정도로 정신이 다른 곳에 가 있는 듯한 모습에 말을 걸기 힘들었다. 그래도……
 “계속 그러고 있으면 어디 안 좋은 것처럼 보이잖아!”
 “……아니. 난, ……나는, 괜찮다.”
 “안 괜찮아 보여! 벨! 진짜 대체 무슨 일인데?”
 정말 어느 정도 괜찮은 척을 해 보이려 하지만, 괜찮은 척을 해보려 한다는 걸 알 정도로 표정 관리에 어려워하는 벨스커드를 보기는 처음이었기에 걱정이 되어 미칠 것 같았다.
 대체 왜 그렇게 울음을 금방이라도 쏟아낼 것 같은, 그런 복잡함이 가득한 얼굴인지 알 수 없어서 불안하고 그 얼굴 때문에라도 자신이 더 울고 싶어지는 마음 때문에.
 “혹시 너도 이상한 꿈이라도 꿨던 거 아니야? 그래서, 그런 꿈 때문에라도 신경이 쓰이기 때문에 이러는 거 아니고?”
 “……꿈, 이라고.”
 “너도 꿨던 거 맞지? 벨스커드 후작까지 올라갔던 베르데비아스 벨스커드 준 남작의 그 모습들! 그거 아니냐고!?”
 아르만도시의 비명에 가까울 정도로 높아진 목소리에 벨스커드는 그가 자신이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자각은 하면서 말하고 있는 걸까, 생각하는 동시에 계속 신경 쓰고 있었던 꿈과 더욱 동화되기 시작했다. 아르망.
 “……아르망,”
 “그 꿈이 지금 우리의 현실이랑 관계가 있든 아니든 지금은 상관없는 일이야!”
 할 말을 찾지 못해 한참이나 말을 고르려고 시간을 들이던 벨스커드는 결국 힘겹게 속삭이듯이 숨넘어가는 듯한 목소리를 겨우 뱉었다.
 “상관있을 수도, 있잖나.”
 “벨.”
 그 역시 괴롭다는 듯이 얼굴이 점차 일그러져 턱을 잡아 아래로 끌어내리듯이 고개를 숙이게 했고, 저항 없이 끌려가자 어깨에 먼저 닿는 얼굴의 말랑한 볼이 먼저 느껴지며 귓가에 단호함이 섞인 목소리가 가늘게 들려왔다.
 “데비가 죽었던 일도, 디온과 비베라 아주머니, 비베온 아저씨까지 전부 돌아가시게 된 일도, 그건 그냥 불운한 사고였던 것뿐이야. 그건 그냥 빌어먹을 음주 운전자의 과속에 의한 충돌사고였던 것뿐이라고. 데비가 마지막에 남겼던 말이 꿈과 일치했던 것도 그저 우연일 뿐이야.”
 “……아르망.”
 “정신 차려 베르데스. 네가 아무리 베르데비아스 벨스커드로 현실을 살아가게 된 벨이라고 해도, 그 꿈과 똑같은 정도로 비슷한 길을 걷는다고 해도 그저 우연일 뿐이야. 실제로 있었던 일이라고 해도 지금 일어나는 일이 아니야. 지금, 실제로 신경 써야 할 일이 아니라고.”
 그렇게 말하는 그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역시, 그는 지금 자신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를 얼굴이었고 정신이 어딘가로 빠진 듯한 넋 나간 모습으로 아무 말이나 하는 것처럼 보였다. 정신을 차리면 기억해내지 못할 것 같은, 넋 나간 모습.
 그가 하는 말은 진짜 아무 말이나 하는 건 아니었지만, 딱히 벨스커드가 아니더라도 다른 누군가가 봤다면 그런 생각이 들 수 있을 정도로 아르만도시는 이상하게 보였다. 그렇지만 그만큼 자신을 신경 쓰고 걱정해주며 아껴주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기에 벨스커드는 그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아르망에게,
 “아르벨! 오늘도 어김없이 알콩달콩한 풋사랑 중이셔~?”
 “야, 아무리 커플 이름이래도 벨이라고 하면 벨스커드 화낸다!?”
 “벨스커드! 아무리 아르만도우시래도 계속 그렇게 쌀쌀맞게 튕기기만 하면 두 번 다시는 못 끌어올 테니 적당히 하라고~”
 “맞아, 밀당이란 한 사람의 밀어내기와 다른 한 사람의 당기기로 표현되는 말이 아니라고? 기억해 둬라~ 파하하하하핫.”
 언제나처럼 시답잖게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며 주변의 스캔들에 관심 많은 녀석이 가득한 일상적인 소리를 듣고 난 뒤에야 겨우 꿈이라는 이름의 알테이아라는 기억을 떨궈낼 수 있었다.
 지금, 여기서 아르망에게 그 아르망을 겹쳐 보면서 아르망에 대한 마음으로 대한다면 정말로 그걸 실제로 인정하게 될 것 같아 어깨를 토닥여주거나 다정하게 달래주고 싶다는 생각을 접었다. 그런 실수를 하지 말자, 그런 밑도 끝도 없이 터무니없는 기억…… 아니, 꿈 때문에 흔들려서는 안 돼. ……안 되는데.
 “……시끄럽다. 그런 것이 아니라고 몇 번을 말해도 전혀 들어먹질 않는군.”
 “인정하는 입덕 부정기가 아무리 커봤자 오래 갈수록 힘든 건 너다~ 크하항.”
 깔깔거리며 웃어젖히고 지나가는 녀석들의 무리는 신경을 긁어내리긴 했지만, 정말 사소한 일이었기 때문에 신경 쓰지 않고 겨우내 마음을 다스리며 얼굴을 다시 다듬을 수 있었다. 오히려, 이런 한심하게도 여겨질 수 있는 일상의 소리 덕분에 겨우 다시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었기 때문에, 다행이라고 여겨졌다.
 “하…… 여전히 쓰레기 같은 녀석들이군.”
 “벨.”
 “떨어져라.”
 “벨.”
 “대체 왜 그렇게 쓰레기 같은 눈으로 보는 거냐? 이상한 사람 보듯이…….”
 “벨, 괜찮은 거지?”
 “안 괜찮을 게 대체 뭐가 있다고, 그런 소리를 하는 거냐. 아니면 안 괜찮기를 바라는 건가?”
 “……아니, 아니야. 괜찮아졌다면 됐어.”
 애써 마음을 다듬은 자신의 모습을 보고 그제야 아무 생각 없이 정신을 빼놓고 있던 모습을 다듬는지 멍하니 초점이 풀렸던 그의 눈에 생기가 돌아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무엇을 하든 간에 이젠 더는 이전과 같은 마음으로, 같은 생각으로 대하기는 어려울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아르망을, 도저히 ‘오랫동안 보고 싶었던 반가운 마음’이 아닌 것으로 보고 있을 수가 없으니까.
 ……벌써 다시금 마음이 울렁거리고 도저히 ‘아르만도우시’ 자체로 볼 수 없이 이미 ‘아르망’으로 표현하게 되어버렸기 때문에, 결국 꽤 오랫동안 그 알테이아의 기억에 얽매이게 될 것 같았다.

 “벨? 요즘 대체 왜 이렇게 묘한 눈으로 나를 보는 거야?”
 “내가, ……내가 후작까지는 몰라도 준 남작의 아들일 뿐이었던 베르데스라면 어느 정도 기억이 자꾸만 새어 들어오게 되어서, 제대로 된 사고나 판단이 어려워진다. 정말 단순한 꿈이든 아니든 기억을 떠올리게 될 때마다 연관성이 너무 짙어서 현실과 꿈의 구분이 어려워져, 너를 대체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겠으니.”
 “벨. 그 꿈에서 정확히 뭘 봤던 것인지는 몰라도 지금 현실의 너는, 네 가족은 전혀 다른 죽음을 겪었다고 생각해. 나도, 네가 생각하는 그 아르망과 그렇게까지 연관성이 짙을 것 같지 않다고.”
 아르망의 말에 벨스커드는 잠시 불안하게 일렁이던 눈으로 그를 바라보다가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 말대로, 그렇게 연관성이 짙은 가족들과 아르망의 죽음도 아니었는데도.
 “그러면 너는 뭘 알고 있는 거지? 그 알테이아의…… 무엇을, 어떤 걸 알고 기억하는지. 아니면 꿈을 꾼 건지. 대체 어떻게 그런 소리를 할 수 있는 건지. 대체 뭘 기억하는 거지?”
 “아무것도.”
 “아무것도?”
 “꿈이라…… 그래, 항상 꿈이라 여겨지지 않을 정도로 현실감각이 엄청난 꿈을 꿨었고 그 여파에서 벗어나지 못해 힘들 정도로 영향을 받은 건 있지만, 매번 정신을 제대로 차리고 보면 그 기억은 전부 사라져버려서 정확히 내가 뭘 알고 있는 것인지도 전혀 몰라. 아무것도 모르겠어. 하지만, 벨 네가 이상한 기억, 꿈이라고 하는 걸 보고 떠올릴 때마다 힘들어하는 모습이라도 보인다면 난 그게 더 힘든걸.”
 “뭐라도 도움이 되거나 힘이 되어줄 수 있다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아무 말이라도 하는 거야,” 라며 한쪽 뺨에 손을 갖다 댄 아르망의 모습은 분명 ‘아르망’의 것과 많이 닮아 있었다. 그랬기에 저도 모르게 감상적으로 눈을 감고 그의 손길을 뿌리치지 못한 상태로 위로 같은 쓰다듬을 받아 다시금 향수를 느끼게 했다.
전혀 근본 없다고 할 만큼 뜬금없는 꿈과 기억이라고 할지라도 그걸 향한 그리움과 향수는 심장을 울적하게 울렸고, 저도 모르게 그에게 어리광에 가까운 투정 비슷한 것을 부리기까지 하게 만들었다. 작은 손을 감싸고 그 손에 얼굴을 붙여 묻어버렸다.
 “아르망.”
 “……벨? 웬일로……”
 “아르망, ……아르망 당신은, 당신은 너무 내 정신과 마음을 좀먹게 만들어.”
 그가 이름으로 부르는 것을 처음 듣는다 싶어 웬일인가 싶었지만, 그가 부른 ‘아르망’은 지금의 아르망이 아닌 것을 알아채 벨스커드의 울음에 젖어가는 듯한 목소리를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내가 아니야. 아르망 아르만도우시가 아니구나.
 “아르망……. 너는, 당신은…… 우리를 위해서 정말 목숨을 걸고 지켜줬습니다. 갑자기 나타난 골드 드래곤 때문에, 마을을 휩쓸고 부모님도 베르디오네도 죽었을 때, 나와 데비까지 그것 때문에 죽을 뻔했을 때, 우리 두 사람을 위해서 결계…… 아니, 네스트까지 만들면서 지키려 했었어. 우리를 살리려 했고 결과적으로 살릴 수는 있었지만 그건 단 한 사람밖에 살리지 못했고, 결국 내 형은, 데비는 나를 위해 감싸주면서 대신 죽었어요.
 ……‘언제나 그랬듯이, 네가 나를 흉내 내는 거야. 나는 너를 흉내 낼 거니까.’라고 유언이나 마찬가지일 말을 남기고 간 베르데비아스, 그 녀석 때문에 그 이후부터 더는 베르데스일 수가 없었어. 나는 베르데비아스로 살 수밖에 없었어. 그때서야 결국 내가 왜 그렇게 아르망한테 집착하고 같이 귀족 후계자 수업을 받겠다고 했던 건지 알 것 같았습니다. 둘이서 하나인 쌍둥이. 하나가 없어져도 다른 하나가 남아서 원래 한 사람처럼 장난치며 행동하던 그대로 그 ‘한 사람’을 연기하며 살 수 있을 정도로 모든 걸 공유하던 쌍둥이는,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둘이서 하나’에 집착했던 것 같아. 데비는, 데비아스는 지금도 그렇게 떠났기 때문에 내가, 내가……. 아르망은……”
 가볍게, 그렇지만 아프지 않을 정도도 아닌 세기로 두 뺨에 와 닿는 충격과 온도에 벨스커드는 조금이지만 놀란 탓에 눈썹을 찌푸리면서도 눈을 번쩍 떠버렸다. 그리고 크게 뜨인 눈앞에 보이는 아르망은 그 아르망처럼 홍채가 전부 하얀 흰 눈이 되어 있었기에 알테이아의 기억과 향수에 거침없이 젖어 들어갔다.
 “나는 그걸 후회하지 않아. 후회할 일도 아니었고 너 하나만이라도 지켜냈었다는 것만으로도 정말 충분히 만족하며, 후회할 수도 없었을 거야. 나한테 죄책감 느끼지 말고, 데비한테도 죄책감 가질 필요는 없어. 지금은…… 그때도, 지금도, 결국 베르데비아스는 너고 그렇게 될 필요가 있었기 때문에 데비가 너에게 그걸 넘겨줬던 거겠지.”
 “……아르망. 나는 베르데비아스가 아니에요. 베르데스이길 원하는, 데비를 연기하는 ‘벨’일 뿐이야.”
 그런 벨스커드를 보던 그는 길게 한숨을 내쉬고 말을 꺼냈다. 벨, 기억 속의 향수는 적실만한 게 그것밖에 없었니?
 “내가 널 처음 보고 만났을 때, 그때는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베르데비아스까지 막 잃은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던 거 기억해? 너 혼자만 자리할 수밖에 없었던 그 장례식장에서, 우리가 만났던 걸 말이야.”
 “……아르망. 나는, ……그때 처음으로, 그때부터 지금까지 쭉 너밖에 모르는 비밀을 말했었지. 너밖에 모를, 다른 사람들이 알아서는 안 되는 베르데스의 존재를. 베르데비아스의 존재를.”
 “유언…… 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그렇게 영향력이 있는 말을 ‘언제나 그랬듯이, 네가 나를 흉내 내는 거야.’라고 말한 데비 때문에, 죽은 사람은 베르데스가 될 수밖에 없었던 진실을. 데비가 죽을 수밖에 없었던 사고를 낸 사람의 인상착의가 제레인트 씨였다는 걸.”
 벨스커드는 제레인트를 언급한 끝말에 인상을 찌푸리다가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그래, 그 빌어먹게도 원망스러운 제레인트.
 베르데비아스, 현재의 제 형제였던 이가 죽은 이유인 제라이언 제레인트는 뻔뻔한 인물이었다. 술을 마시고 음주 운전을 한 것도 모자라 실수라고 주장하는 뺑소니로 베르데비아스를 죽이고 도망간 뒤 그 시각에 다른 사람을 시켜 ‘제레인트’의 지인과 함께 있었다고, 그 사고지점에 없었다는 확실한 알리바이를 만들어 유죄 혐의에서 벗어난 사람. 분명히 감식을 위해 확인했던 카메라의 영상에서도 똑똑히 볼 수 있었던 제레인트의 독보적인 독특한 특징인 금발 알비노, 백금발의 머리카락과 석양빛을 닮은 붉은 눈은 도저히 그가 아니라고 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런데도……
 “벨. 지나간 날에서는 이만 벗어나는 게 좋아.”
 “하지만!”
 “이미 지나간 과거는 과거일 뿐이야. 그렇게 걸어온 길은 확실히 존재하고 되돌릴 수 없으며, 그 기억에 묻혀 현재와 미래를 걸으며 살 수 없게 된다면 그건 가끔 곱씹어낼 수 있는 추억이 아닌 발목을 잡을 썩어버린 과거가 될 뿐. 거기에 매달려서는 안 돼.”
 “그렇지만 그는 내 형제를 죽인 살인자다! 그런 그에게 혐의가 없다며 방관하고 어쩔 수 없다며 내버려 두는 사회에서, 그런 세상에서 사는 내가 알테이아의 꿈까지 꾸며 현실과의 유사함에 정말 나의 그 과거를 놓을 수 있으리라 생각하는 거냐!?”
 “벨.”
 도저히 기억을 놓지 못하겠다는 듯이 꿈의 아르망과 겹쳐 보면서 저도 모르게 그에게 어리광을 부려버린 벨스커드는 그만하라고 질책하는 듯한 아르만도우시의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에 숨을 거칠게 몰아쉬었다.
 “아르망…… 아르망, 아르만도우시. 아르만도우시…… 너는, 넌 정말 잔인하다. 나한테 그런 소리를 할 것이었으면, 그렇게 온전히 ‘알테이아’를 끊어낼 수 있어야 한다는 듯이 말할 것이었다면, 네가 벨스커드 후작과 베르데비아스 벨스커드 준 남작에 대한 그런 말 자체는 꺼내지 말았어야 했어. 그것이 우리의 현실과 관계가 있든 아니든 지금은 상관없는 일이라고, 그렇게 말을 하지 말았어야 했어. 왜 네가 더 언급해놓고 아무것도 아닐 일이라며 그걸 덮어두라는 말을 하는지 알 수가 없다.”
 “나는 벨, 네가 꿨다는 그 꿈에 대한 확신이 필요했을 뿐이야. 그리고 그건 지금 우리의 현실에 끌어올 수 있는, 현실로 끌어와도 되는 기억이 아니라고 확신할 수 있기 때문에 네가 지금 현실과 아무 관계가 없는 보잘것없는 꿈에 휘둘리지 않길 원해서 그런 소리를 하는 거야.”
 “내가 그게 가능할 거로 생각하는 게냐!”
 “……너는 무엇에도 휘둘리지 않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래. 그럴 수 있을 거로 생각해서 하는 말이었어.”
 대체 왜 그래?
 벨스커드는 정말 알 수 없다는 듯이 인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갸웃거리는 그의 모습에 기어코 애원하는 목소리를 낼 수밖에 없었다.
 “불안해서 미칠 것 같다. 아르망은, 너는, 그때 그 골드 드래곤 때문에 결국 네스트가 깨져서 각혈을 하며 그대로 죽어버렸기 때문에…… 그렇게 죽었기 때문에 우리 두 사람을 전부 지키지 못했기에, 베르데비아스 역시 그렇게 그 드래곤에 의해 죽어버렸으니까……. 네가 죽었으니까…….”
 축축한 물기를 머금은 벨스커드의 말에 그제야 왜 그가 그렇게 미칠 듯이 기억에 가까운 꿈과 과거에 집착하는지 알 것 같았다.
 ‘알테이아’ 꿈에서 베르데스 벨스커드는 마을을 덮친 골드드래곤 때문에 제 가족과 형제, 그리고 아르망을 잃었다. 현실에서의 베르데스 벨스커드는 제라이언 제레인트의 아버지인 제레인트 의원의 음주운전 사고 때문에 부모와 여동생을 먼저 잃었다. 제레인트 의원은 차마 덮을 수 없는 그 사고 때문에 옷을 벗는 것으로 책임을 지게 되었지만, 그 아들인 제라이언은 사건이 터진 지 얼마 되지 않아 금방 베르데스의 형제인 베르데비아스를 음주운전 뺑소니로 죽음까지 이끌었고 제라이언은 혐의에서 벗어나는 것도 모자라 책임을 지지 않았다.
 제레인트는, 그와 우연한 기회로 마주친 적이 있었다. 그리고 몇 달 전부터 그를 눈독을 들이며 제레인트 사람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자주 접촉을 하고 있었다.
 “……내가, 나도 제레인트 때문에 죽게 될까 봐 걱정하는 거야? 그 골드 드래곤이라는 존재와 제레인트 일가가 네 가족에게 한 짓이 동일해서?”
 평소 같았으면 걱정을 했다고 해도 솔직하게 대답을 한 적이 없는 벨스커드였지만, 지금의 그는 솔직한 심정을 그대로 애절한 목소리에 담아 내보냈다. 정말, 불안해 보이는 모습이었다.
 “불안하다. 나는, 또다시 너를 잃는 그 감각을 느끼게 될 것 같아서 미칠 것 같다. 도저히 너마저 잃지 않으리란 확신을 할 수가 없어서, 제레인트가 불안하고 네가 걱정된다.”
 “내가 죽을 것 같다고 생각해?”
 “……지금의 나에겐, 너마저 내 곁을 떠나게 된다면, 언제가 되더라도 나보다 먼저 삶을 끝낸다면 도저히 견딜 수 없을 것 같으니까. ……나는 제레인트를, 도저히 믿을 수가 없다. 도저히 꿈을, 꿈과 현실을 분리해서 별개의 것이라 여기기 힘들다.”
 벨스커드가 무슨 말을 할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그에게 요구하는 울음 섞인 목소리. 절대로 죽지 말라는 말.
 “그 꿈이, 정말 단순한 꿈일 뿐이며 현실과 전혀 관련이 없는 것뿐이면 그걸 증명해라. 살아남아서, 제레인트에게 죽지 않고 죽음을 피해서 꿈은 그저 꿈일 뿐이라고 내가 확신할 수 있게 살아라. 정말 내가 겪은 현실이, 이 현실과 꿈은 별개의 것이고 단순한 우연일 뿐이라 확신할 수 있게 증명하도록……”

 하지만, 벨,

 죽음은 죽음이 가까이 다가온 것을 알아챈 사람에게 짙은 냄새를, 죽음의 악취를 숨기지 않는걸.

 아르망이 죽고, 아르만도시도 결국 죽음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을 알 수 있던 그는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확신을 안겨주지도 못하고, 증명도 해줄 수 없던 아르만도시는 벨스커드의 우려대로 제라이언 제레인트에 의해 죽을 수밖에 없었다.

‌* * *

 벨스커드는 자기 자신을 죽였다.
 베르데스를 죽이고, 자신을 대신해 숨을 삼켰던 베르데비아스가 되어서 결국 준 남작의 작위를 이어받았다.
 ‘언제나 그랬듯이, 네가 나를 흉내 내는 거야.’
 기억 속에 남은 쌍둥이 형제의 말은 그를 구속하는 속박이 되어 벨스커드에게서 벗어날 수 없게 만들었고, 드래곤을 향한 기이한 증오를 만들어냈다.
 드래곤은 전부 악한 존재이자 삿된 것이다. 잔혹하고 모두 말살 시켜 씨를 말려버려도 시원치 않을 혐오스러운 존재. 특히 그 이상하고 특이한 형태의, 절대 잊을 수 없는…… 골드 드래곤.
 “벨스커드?”
 “……제레인트.”
 “잠시 주변을 돌아보던 중이었는데…… 병사가 많군.”
 “당연한 말을. 지금은 전시다. 그보다 간밤에 말한 만찬에 대한 준비는 마친 상태겠지.”
 “네가 말한 주의 사항을 외우기는 했다. 이런 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걸로 됐다. 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벨스커드 후작은 그를 괜히 미심쩍은 눈으로 바라보다가 어깨를 툭툭 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괜한 핀잔을 준 건 아닌가 싶어 조금 어색하게 표정을 풀어 보았지만, 자신을 따라 어색하게 웃음 지어 보이려는 제레인트의 모습에 녀석을 믿겠다는 마음을 다시 단단히 묶어뒀다. 제레인트는 그런 악하고 삿된 존재일 수가 없다.
 “제레인트. 블랙 드래곤이 쓰러지기 전까지 긴장을 풀지 마라.”
 모두 네 녀석을 믿고 있다, 고 맥없이 중얼거리려 했지만 어쩐지 말이 쉽게 나오질 않아 결국 고개를 돌렸다.
 제레인트는 믿을 만한 존재고, 정말 오랜만에 만난 좋은 동료였다. 사실 그를 의심하고 싶지 않았으며 믿음에 대해 쉽게 의심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지만…….

 믿어서는 안 되었다.
 그렇게 마음을 내어주고, 의심하지 말자고 믿음을 더욱 굳게 묶어서는 안 되었었다. 차라리 그 의심을 가진 보따리를 조금씩이나마 풀어내고 있었더라면 나았을 것을.
 “제레인트, 제레인트……! 네가, 네가 감히!”
 “벨스커드, 안 돼!”
 “날 말리지 마라, 제레인트! 네놈이, 네가…… 골드 드래곤인 네가! 내 마을과 가족을, 형제를, 아르망의 숨까지 깨뜨렸던 네가 나에게 말릴 자격 따위는 없다! 악하고 삿된 드래곤 주제에 감히!”

‌* * *

 믿어서는 안 되었다.
 제레미아에게 그렇게 마음을 내어주고, 그를 좋은 친구라고 생각해서는 안 되었었다.
 제레미아가 증오스러운 ‘제레인트’여도 상관없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했었지만, 여전히 ‘제레인트’를 용서할 수 없는 복수심이 가라앉지 않았다. 전부 다 죽고 없는 가족과 아르망을 떠올릴 때마다 분노와 복수의 감정만이 격양되어 그가 ‘제레인트’이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 더 커져만 갔다.
 좋은 친구라고 생각하고 있던 친구에게 믿음을 배신당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더 간절히 바랐지만, 그래서는 안 되었다.

 제레미아.
 그 녀석을 믿지 말 걸 그랬어.




 살다 보면 오래도록 남을 강렬한 감정 몇 개쯤도 간직하곤 한다.

 “제레인트…… 그래, 제레미아 ‘제레인트’라고?”
 “베, 벨스커드, 난, 나는…….”
 “똑바로 말해라! 네가 그 제라이언 제레인트의 쌍둥이라는 것을, 내 형제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녀석의 알리바이를 만들어주고 혐의에서 벗어나기까지 할 수 있게 만든 녀석이란 것을! 아르망까지 숨을 꺼뜨릴 수밖에 없었던 녀석의 혈연이란 것을! 우연히 닮은 금발과 노을빛의 눈을 가진 네놈이 아니라, 쌍둥이 형제답게 그렇게 닮을 수밖에 없었던 이 백금발의 알비노를!”
 “벨스커드! 하지만 그것들은 전부……”
 “자신의 이름을 필명으로 써서 ‘제레미아’라고만 알 수 있게 나를 속이고, 그 옆에서 ‘제레인트’를 부숴버리고 싶어 할 정도로 증오하는 내 모습을 보면서 대체 무슨 생각을 했었나? 바로 옆에서 바보 같은 짓을 하는 날 보며 속으로 비웃고 기만한 것이었나? 제레미아! 아니, 제레인트!”
 정말 완벽한 실패다.
 패배감과 배신감, 실패밖에 느껴지지 않는 절망은 몸을 갉아 먹었고 삶의 목표라고 할 수 있었던 복수를 향한 열정은 다시 피어오를 수 없을 것 같은 무력함에 사로잡힌다.
 내 실수다.
 아르망을 잃은 뒤 절망에만 빠져있던 나를, 형제를 잃은 나를 구원해주고 도와주며 달래줬던 아르망처럼 다가온 제레미아는 절대로 의심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아르망과 닮았기에 애써 ‘제레인트’의 알비노와 제레미아의 노을을 닮은 눈에 백금발의 연관을 짓지 않았던 나의 실수다.
 ‘알테이아’ 꿈에서조차 골드 드래곤의 의혹을 가지고 있었던 제레인트에게서 그를 믿기 위해 의혹의 싹을 일부러 짓밟아버렸던 자신의 믿음에 배신당한 것조차 외면하려던 나의 실수다.
 제레인트 때문에라도 더 믿고 싶었던, 제레미아라면 ‘제레인트’라도 괜찮지 않을까 싶은 오만했던 나의 실수다.

 제레미아 제레인트.
 나의 패배구나, 제레인트.

 자신의 실수, 정말 사소한 말실수라고 할 수 있을 실수 하나 때문에 한 번에 와르르 무너져버린 벨스커드를 보던 제레인트는 그의 피눈물을 외면할 수 없었다.
 “제레인트…… 제레인트…….”
 벨스커드가 제레인트를 증오하는 것을 알았다. 제레인트가 그의 소중한 것들을 앗아간 일을 알았다. 그러나 제레미아로서 도우미 아주머니로부터 전달받은 제라이언의 마지막 말 때문에 차마 진실을 밝힐 수 없었다.
 ‘제레미아를 돌려줄게. 하지만 제라이언 역시 살려줘.’
 둘이서 하나인 인생의 연극을 위해 세상에 알려지지 않아 자유롭게 지낼 수 없었던 제라이언은 동창회의 제레미아이길 원했었기 때문에, 베르데비아스의 형제인 베르데스를 죽음까지 이끈 그 아이는 죄책감에 자신의 숨을 삼키고 싶어 했다. 그런 녀석을 그대로 둘 수가 없어 제라이언이기를 자처했고, 제레미아가 된 녀석은 이름을 필명으로 써서 낸 책의 작가가 되었다.
 제레미아가 베르데비아스와 마주치고, 제라이언으로서 괴롭게 숨을 조여 오는 죄책감과 부채감 때문에 그를 ‘친구’라고 하는 벨스커드의 ‘증오하는 제레인트’를 마주할 수 없던 유약한 형제는 숨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자신에게 ‘제레미아’와, 벨스커드의 삶의 원동력이자 목표가 될 수 있는 ‘제라이언 벨스커드’를 남겨두길 바라면서.
 “넌 나를 대체 뭐라고 생각했던 게냐, 제레인트…….”
 비밀을 가지고 있던 것이 실수였던 걸까. 아니면 비밀로 숨겨둬야 했다고 생각했던 것이 실수였을까.
 “내가 너에게 줬던 기회가 우스웠나? 꼴에 같잖게 기회를 주려던 모습이 우스웠겠군그래…….”

 “베르… 벨스커드, 미안해. 제발, 내가 잘못했네!”
 “이번에는, 그래도 분명히 기회를 주었던 것 같았는데…… 내가 어리석었구나. 네놈의 박쥐 같은 그 배신을 외면하려고 믿었던 내가 어리석었어!”
 “베르- 벨, 벨스커드! 아니야, 배신하려고 했던 게 아니었어!”
 “너라면, 제레미아라면 ‘제레인트’여도 상관없지 않을까, 괜찮지 않을까 하면서 진심으로 널 믿고 싶어 했던 날 보고 대체 무슨 생각을 했었으면! 날 대체 뭐라고 생각했던 게냐! 얼마나 호구로 보았던 게야!”
 제레미아는, 제레인트와 다르다.
 제레미아를 제레인트와 다르다고 생각하려던 믿음은 잘못되었다.

 “결국 너는 ‘알테이아’와 전혀 다르지 않은 제레인트였어!”
 자신을 믿고 알테이아의 꿈을 알려주며 ‘배신자인 골드 드래곤 제레인트’와 다른 존재라는 것을 확신하고 싶어 하던 베르데비아스 ‘벨스커드’에게 제레인트이길 거부했던 그는 제레인트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오랜만에 만난 좋은 동료, 오랜만에 만난 좋은 친구일 수 없는 배신자 제레인트.
 오랜 동료이자 나의 벗이여, 미안하다.

 ‘알테이아’의 꿈을 꾸면서도 그가 배신하지 않을 것이라 믿었던 눈가림을 후회한다.

 ‘알테이아’의 꿈을 꾸면서도 감출 수 있는 비밀도 존재하리라 믿었던 안일함을 후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