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플스토리 / 매그너스 × 르네
“그러므로 신이시여, 우리를 굽어살피시옵소서.”
나는 신을 증오한다.
나는 신을 증오한다.
나는 신을 경멸한다.
나는 신을 저주한다.
내가 불행하다는 것을 깨달은 바로 그 시점에서부터, 나는 내내 신을 끔찍이도 혐오해왔다.
나의 세상은 날 때부터 무기질. 궁금증을 앓는 것조차 허용되지 않은 지성의 감옥으로, 존재하는 것이라고는 오로지 신을 믿는 어리석고 방만한 흰 옷의 무리들과 표정 없는 흰 온도의 대리석으로 된 감옥 같은 경계 뿐.
내가 원하는 모든 것들은 그 경계 밖에 있었고, 나는 원하는 것조차 허가받지 못한 채로 영원히 그 지옥 속에서 도구처럼 보관되어 살아와야 할 운명이었다.
그 운명이 바뀐 것이 어느 날의 봄, 아름다운 들꽃이 피던, 나는 그야말로 상상할 수조차 없었던 새하얀 토끼풀이 발밑을 가득 간질이던 봄의 한가운데. 검집에 갇힌 검신처럼, 빛 하나 새어들어오는 것조차 보지 못한 채 옴싹달싹할 수 없었던 나를 빼내 금빛 햇살을 흘리워내 준 내 구원자. 어리고 사랑스러운, 초목처럼 아름다운 나의 소년.
나는 구원받았다.
그리고 동시에, 선악과를 깨문 이브처럼 벌거벗은 세상을 깨달았다.
뱀, 과 사과와 여인과 사내는 많은 종교의 뿌리로 쓰이는 소재지, 나는 그것을 조금 끄집어내었을 뿐이고.
우리는 고대의 용으로부터 전개되어 만들어진 퇴화한 종족이다. 두개골에 달린 두 개의 뿔과 척추에서 이어지는 꼬리와 어깨뼈와 연결된 날개가 그것을 증명한다. 신은 너희는 퇴화하였으며 열등하게 되었고 그리하기에 전능한 우리를 위해 열성을 다하라 말하곤 하지만, 어찌 이것을 퇴화라 단정짓는단 말인가?
고대의 선조들은 지나치게 강했다. 그리하여 도태되었다. 아무런 위협도 천적도 없는 세계 속에 그들이 다루는 힘만이 유독 도드라졌다. 날씨를 조종하고 땅을 뒤흔들며 바다를 움직이는, 대체 그 어떤 생물체가 다른 것의 손짓 하나에 으스러지는 불합리함을 견디며 살고 싶어 하겠느냐는 말이다.
위대한 신.
좋은 말이다.
허울 좋은 말이다.
나는 그들의 실체를 안다. 벌거벗은 그것들의 비늘은 닦아 줄 이도 없어 이끼가 끼고 머리통만한 눈동자는 먼지처럼 흐려진 것을 이미 안다. 그렇지 않은 이상 그토록이나 어리석을 수가 없다. 그들은 그저 과거의 영광을 잊지 못하고 계속하여 떵떵거리고 싶어 하는 늙은이들이다. 노쇠한 것이 흔히 그러하듯 제 머리 하나 못 가누는 갓난 것과 크게 다를 바가 없어 고작 여자아이 하나가 제 마음대로 되지 않았음에 그 포악한 힘의 덩어리를 마구잡이로 쏟아 부어 내리는 어리석고 멍청하며 멋대로인 성품의, 그 늙어빠지고 교만하며 오만하고 역겨운 것들.
나의... 내 소년. 나의 아름답고 강대하고, 용감하며 다정한 소년. 그를 대체 무어라 부르면 좋을까, 이 세상에 왕에게 쥐어져야 할 황금 검이 있다면, 마땅히 그것은 그의 손에 있어야 할 텐데.
세계를 증오하지 않은 것은 네가 이 세상에 존재하기 때문이다ㅡ그런 감미로운 말을 하게 되고 말 정도로, 너는 지독히도 아름답고, 어쩌면 그 이름만큼이나 위대하기도 해서.
신 따위는 필요 없어. 그 머저리같은 이들은 신이라 불릴 자격도 없어. 정말 신에 가까운 것은 너야, 매그너스. 날 그 지옥에서 구원해 준, 너.
맞는 치맛단조차 없어 허리와 소매를 몇 번이고 접어 입어야 할... 그 어린 나이의 여자아이에게 신은 무엇을 했지? 나는 이름조차 불리우지 못한 채, 음식이라고는 책에서만 나오는 산물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채, 오직 신을 위해 쓰이기 적합한 순결한 몸과 그들이 기뻐할 유순한 성품을 지닌 아이로 키워지기 위해, 입에 닿는 것은 성수와 몸을 간신히 유지하는 영양액으로, 밖으로 나갈 수 있는 것은 아주 특별한 날에 마차에 갇힌 채로, 의견을 낼 수 있는 것은 신의 목소리를 대리하는 것으로.
그러니 내가 그를 얼마나 사랑했겠는가? 너무도 진지한 눈동자로, 나를 너무도 어여쁘다 말하며 씩 웃고 마는 내 또래의 사내아이에게 어쩌면 반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나의 어림과 미숙함과 상관없이, 나는 너를 사랑할 수밖에 없었다, 나를 구해준 것은 그 전에도 후에도 오직 너뿐이었으므로. 너는 너무도 찬란했고, 아름다웠고, 눈물이 나도록 빛났고...... 아, 어쩌면 그럴 수 있는지. 나에게 너는 너무나 특별하고 소중한 이였는데, 도무지 그렇지 않고서는 배길 수도 없는 존재였는데.
네가 그렇게... 나를 생각해 줄 수 있을까. 나는 도저히 믿을 수가 없어. 어떻게 그렇게 다정한 눈으로 나를 바라봐 주었을까, 어떻게 나에게......
네 눈은 마치 보석 같아. 황금으로 한 바퀴 둘러 팔찌에 박은 페리도트 같아. 태양 아래에서 빛이 나고, 달빛 아래에서도 그 선명함을 잃지 않고 반짝이지, 그토록 달콤하고 감미로운 것이 어디 있어. 네 뺨은 건강한 남자아이처럼 타 있었고, 언제나 조금 달아올라 있었고, 씩 웃으면 빼죽한 송곳니가 도드라져서 정말로 사랑스러웠는데. 그 웃음을 다시 한 번 보고 싶어, 하지만 네가 내게 다시 웃어 줄까. 늘 그렇듯이 나는 겁이 많고 네가 없으면 무엇도 되지 않아서, 나를 부르며 울던 네 목소리에, 어쩌면 다시 만나면 나를 미워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밖에는.
매그너스, 나는 신이 싫어.
나는 신이 미워.
네가 나를 데려가 줘, 나를 신에게서 데려가 줘.
오늘도 그런 기도만을 하면서.
도무지 신을 좋아할 수가 없다니까.
신학 수업을 빠지는 건 지루해서가 아니라 그래서라고, 이 대장님이 말했지.
언젯적 대장님이냐고? 야! 한 번 대장은 영원한 대장이야! 몰라? 이것들이 진짜! 나랑 또 토너먼트 해! 토너먼트!
그 애가 떠난 지 얼마나 지났지. 몇 년? 몇십 년?
편지를 보내고 싶었다. 처음에는 미안하다고 하고 싶었어. 그 다음에는 보고 싶다고 하고 싶었지. 그리고... 그리고는 없어. 난 쭉 너를 보고 싶었어, 그것 뿐이었다.
미안해, 내가 나가자고 해서 미안해, 너를 아프게 해서 미안해...... 침대에서 울면서 계속 그것만 생각했는데. 어머니가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서, 매그너스는 잘못이 없단다, 하고 달래는 소리에도 고개를 저으면서.
내가 잘못이 없다면 누가 잘못했단 말인가.
르네는 마치... 조개 속의 진주 같았다. 꽉 다물린 입 안에 품고 있는 혓바늘 같은 이물. 어쩌면 진주가 아니라 그 조개의 살이 르네의 본질이었을지도 모르고.
분처럼 흰 뺨, 별을 바른 듯이 빛나며, 검게 내리깔린 속눈썹... 허물처럼 투명하고 얇은 베일 너머로 비쳐 보이는, 장미꽃처럼 말린 흑발. 어찌나 아름다운지. 그 흰 대리석 벌판 위에 앉아 있는 작은 소녀는 어찌나 아름다운지 마치 신처럼 보였다.
붉은 입술에서 나오는 목소리는 종달새 같은데, 그 얼굴은 웃음조차 제대로 짓지 못할 정도로 어설프고, 말랑말랑하고 부드러운 손끝으로는 토끼풀 하나 제대로 얽어매지 못하는 나의 어린 공주님.
그 애를 보면 눈이 부셨다. 세상 물정을 모르는 듯한 소녀에게 뭔가를 알려 주면서 우쭐해 하다가도, 결국 그걸 모른다는 이야기는... 경험해 본 적 없다는 것임을 깨닫고 슬퍼지곤 했었다.
다른 누군가에게 비밀로 하고 싶으면서도, 동시에 온 세상을 안겨주고 싶었다. 네가 결코 그럴 수 없는, 나 따위가 그래서는 안 되는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된 날에도, 그 뒤에도, 내 주제에 나는 감히 그러했다.
그렇지만 어떻게 그러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 눈동자는, 너무도 슬프고 외로워서, 손을 잡고 눈을 들여다보며, 영원히 곁에 있을 것을 꿈꾸게 했는데.
대체 누가 당신을 그토록이나 괴롭게 했는지, 당신을 그토록이나 외롭게 했는지. 어째서 신의 숙녀라 불리는 슐리아가, 순은의 처녀이고 축복의 증표인 여인이 단 하나의 영광조차 없이 그 텅 빈 벌판에 홀로 놓여져 있었는가.
그렇다면 나 같은 놈이 잡아가더라도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닐까.
둥글게 굽이져 빛나는, 투명한 보석 같은 보랏빛의 뿔, 불꽃에 비쳐 나를 바라보며 웃던 달빛처럼 흰 얼굴, 나는 그 장면을 영원히 기억할 것이다. 그러지 않을 수가 없다, 그 때의 내가 얼마나 어린아이였든간에, 나의 마음은 그 무엇보다도 진지했고 순결했다. 오히려 어린아이였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오랜 맹세들과, 정제되어 이름조차 붙여지지 않은 날것의 순수한 감정들을, 평생을 다해 모조리 그 순간에 쏟아내었다.
그러니 사랑할 수밖에 없다. 나의 남은 나날은 언제나 신녀의 소식을 쫓으며, 슐리아의 새로운 이야깃거리에 귓대를 세운 채로 흘러가겠지. 왜냐하면 나는 가장 빛나는 날, 나의 봄을 모조리 르네에게 주었으니까.
사랑스러운 여자아이. 웃는 얼굴이 어설프고 예쁘고, 그래도 환하게 웃으면 불이 켜진 것처럼 반짝이는 여자아이. 조금 쉽게 토라지고 당황하면 횡설수설하고, 아는 것은 많으면서 어딘가 엉뚱하고, 바깥을 필사적으로 동경해서 아무것도 아닌 나의 모든 것을 보물처럼 바라봐 주었던 그 아이.
이제는 다시 그럴 날이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아마도, 그러지 않을 확률이 높겠지. 나는 하찮은 평민 남자아이고, 그 아이는 신에게 손아귀를 잡혀 여름의 말미에 끌려가고 말았으므로. 불꽃의 타는 꼬리처럼 찬란하게, 빛나며......
이 타는 슬픔은 그야말로 신에게밖에는 토해낼 수 없겠지. 나의 소중하고 사랑스러운 르네를 빼앗아 간, 되돌려 받았다 우기며 멋대로 방치해 둔 그 아이를 다시 감옥 속에 가두어 두러 간 신에게, 그런 신에게밖에는.......
르네, 네가 나를 잊어버리더라도, 내가 하찮은 평민 남자아이일 뿐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더라도, 나를 미워하더라도, 나를 증오하더라도.
나는 네가 좋아. 너를 다시 만나고 싶어. 다시 한 번만 네 얼굴을 보고 싶어. 네가 웃는다면, 그래서 행복하다면 나는 어떻게 되어도 좋아.
그렇지만 네가 행복하지 않다면 나는 다시 신에게서 너를 훔치러 갈게.
“...그러므로 신이시여, 우리를 굽어살피시옵소서.”
도무지 신을 좋아할 수 없는 것이, 어느 여름날부터였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