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영웅은 싫어 / 오수 드림
*캐해석, 설정 날조 주의
*급전개 급마무리주의
특기 탓에 다른 사람과 지내지도 못한다. 집안에서도 격리된 것과 마찬가지였다. 저를 웃으면서 반기는 사람은 드문 편이고 그 작은 세계를 살아가는 것만이 일상이고 일생이었다. 어릴 땐 잘 지냈던 친구는 현재 고등학생이 되어 사회의 발판을 준비하는 중이다. 그 덕에 예전처럼은 잘 못 만나지만 그래도 매일 연락한다. 그 연락이 끊기면 어떻게 될까. 오수는 상상하기도 싫었다. 매일매일 그의 전화만 기다렸다. 휴대전화가 울리자 제일 먼저 화면을 확인했다. 배경화면엔 자신이 기다리던 그의 이름이 적혀있다. 활짝 웃으며 전화를 받았다.
[저녁 많이 먹었어? 오늘은 날씨가 좀 쌀쌀한 것 같아. 감기 걸리지 않게 조심해.]
“응. 괜찮아요. 오늘은 뭐 했어요?”
[오늘은 기말고사가 있었어. 문제가 너무 쉬워서 다 풀고 잤어. 완전 기운 넘쳐 쌩쌩해. 오수는 뭐 했어?]
“선생님이 오셔서 공부했어요. 그리고 일호랑 이호랑 산책했어요.”
매일 같은 행동과 일상인데도 친구는 매일 새롭게 반응을 해줬다. 일부러 그러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렇게 해주는 그에게 고마웠다.
[아 맞다. 나 이번 주까지 기말고사니까 다음 주 주말에 놀러가도 돼?]
“이번 주 주말은요.”
[미안. 조별 과제 때문에…]
작게 괜찮다는 오수의 목소리가 들렸는지 그는 빠르게 주제를 돌리려 한다.
[하기 싫어 죽겠어. 빨리 여름 방학이 왔으면 좋겠다. 그래야 오수랑 놀러도 가는데.]
“제가 어떻게 놀러 가요.”
[우리 별장에 가면 되지! 오수랑 일호쌤이랑 이호쌤이랑 놀러 가는 거야! 어때?]
“정말요?”
[응. 정말로!]
다시 밝아진 목소리에 가면 뭘 할까 하면서 둘만의 계획을 짜기 시작한다. 근처에서 바닷가에 들어가도 보고 산책도 하고 저녁엔 바비큐 해 먹을까. 밤늦게까지 놀고 날씨가 좋으면 별구경도 하자. 통화가 길어지자 몸을 눕혀 어떤 걸 할까 생각했기 시작했다. 이런 생각과 계획이 너무나 재밌다.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게.
눕혀진 몸이 나른해 눈까지 감기고 목소리가 점점 느려진다.
방에 불이 켜진 걸 발겨난 청와가 오수의 방으로 들어왔다. 제대로 주무셔야 하는데. 라며 이불을 빼려니 깨울까봐 새로운 이불을 아랫 사람을 시켜 꺼내온다. 이불을 덮혀주는걸 지켜보던 청와는 오수의 손에 쥐어진 휴대 전화를 발견한다. 화면에 적힌 이름과 휴대전화를 귀로 가져다 대니 아무 소리도 안 들리자 상대도 똑같이 자고 있을 거란 걸 알아차리고 통화 종료 버튼을 누른다.
주인어른과 인사를 나눈 뒤 청와의 안내를 받아 밖으로 나온다. 싱긋 웃던 얼굴은 정색을 하면서 혀를 차니 청와가 저를 따라오던 그를 쳐다본다.
“청와 아저씨가 그렇게 쳐다봐도 전 아저씨가 싫어요. 아저씨 때문에 오수 무릎에 흉터 남은 거 생각하면 지금이라도 당장 사과하라고 하고 싶다고요. 할아버지랑 친하니까 가만히 있는 거죠.”
“… 아가씨 같은 친구분이 있어 다행이네요.”
“청와 아저씨 말과 표정이 다르잖아요.”
“그럴 리가요.”
“청와 아저씨 말대로 전 오수편이라서 그런 거라고요.”
그는 메고 있던 가방을 앞으로 돌려 메 가방 안에서 무언가를 꺼낸다. 부스럭거리며 가방 밖으로 나온 건 쿠키 하나가 든 포장지였다.
“이거 줄 테니까 화 푸세요.”
“화 안 났다니까요.”
“에이. 받으라니까요. 여기서부턴 저 혼자 갈게요. 여기에 한두 번 온 것도 아니고. 저 쿠키 사 왔으니까 오수랑 마실 차 주세요. 따뜻한 걸로요.”
“네.”
다시 가방을 바로 매고 손을 들어 흔든다. 활짝 웃으며 쿵쿵 소리 나게 뛰어가는 그를 보며 청와는 그에게 받은 쿠키를 주머니 속에 넣고선 아랫사람을 시켜 차를 내오게 한다.
한편 빠르게 오수의 방으로 향한 그는 벌컥 문을 연다. 익숙한 듯 오수가 문쪽으로 고개를 돌려 몸을 일으킨다.
“어서 와요.”
“나 오늘 학교에서 친해진 애들이 있어.”
“그래요?”
“조별 과제 하면서 친해졌는데 한 성격하는 애들이야. 걔네들하고 있으면 지루하진 않을 것 같아.”
“다행이네요.”
오수를 보던 그는 가방을 대충 바닥에 던져놓고 오수를 품에 안는다. 당황하는 오수와는 다르게 그는 제 손가락으로 등을 몇 번 두드리다 손을 쫙 펴 등을 소리 나게 팡팡 친다. 순간적으로 놀라 몸이 굳어지자 큰 소리로 웃는다.
“하지만 오수만큼은 아니야. 난 오수랑 같이 학교 가고 싶어. 오수도 만나면 정말 마음에 들어 할 거야.”
“하지만 전…….”
“그런데 오수가 학교에 오면 나보다 어리니까 같은 반은 못되겠다. 내가 할아버지한테 부탁해볼까? 같은 반으로 해달라고.”
당장 휴대전화를 꺼내 제 할아버지에게 전화하려는 그를 겨우 말린다. 입술을 쭉 내밀며 오수의 손을 잡자 오수는 남은 손을 그의 손등 위로 얹는다.
“고마워요. 하지만 전 학교에 갈수 없으니까요.”
“응…. 오늘은 뭐 배웠어?”
“여러 가지 배웠어요.”
“그렇구나. 아 맞다. 오다가 오수 주려고 쿠키… 아. 아아아아-!!”
저 스스로 대충 던져놓은 가방을 보고 주저앉아 가방을 연다. 안에 있던 교과서를 대충 꺼내놓으며 그 아래에 깔린 무언가를 꺼낸다. 오수한테 주려고 사 온 건데.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제 얼굴을 가린다.
“미안해. 오수야.”
“괜찮아요.”
“하루에 몇 개 밖에 안 만드는 쿠키라서… 예약도 안되고 현장에서만 파는 거라서… 내가 직접 줄 서서… 오수 주려고 사 왔는데…”
훌쩍이며 말하는 탓에 정리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오수는 그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 것 같았다. 부서진 쿠키가 든 포장지를 집었다. 포장지를 열자 쿠키 부스러기가 나온다. 그 속에 있는 꽃 모양의 귀여운 쿠키가 온전한 모양을 하지 않는 것을 보고 속에서 하나를 꺼내 먹는다. 맛있다.
매일 저를 보호하던 경호원에게 부탁해도 되는 일을, 그는 직접 저 스스로 기다리며 챙겨왔다. 자신을 위해서. 오수에게는 부서진 쿠키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이렇게 맛있는 쿠키를 구하기 힘든 쿠키를 보고 자신을 떠올렸다는 그 사실이 너무나 기뻤다.
조금 전과 반대로 오수가 그를 안아 토닥여 준다.
“맛있어요.”
“정말?”
“응. 고마워요.”
오수의 말에 그는 손을 치우고 오수를 꼭 안았다. 갑자기 안아온 탓에 들고 있던 쿠키가 든 포장지는 뒤집혀 내용물이 바닥에 흩어진다. 그걸 알면서도 둘은 서로를 꼭 안은 채로 웃었다. 제법 큰 소리가 나자 차와 다과가 차려진 상을 내오던 사람이 다급하게 들어온다. 상을 방 안쪽으로 넣어 둘에게 닿지 않게 거리를 둔다.
저애만 오면 바닥이 엉망이 되는 건 내 착각일까. 쿠키를 주워 준비한 다과 위에 얹어놓고 부스러기를 빗자루로 쓸면서도 오수가 저렇게 기뻐하는 얼굴을 하고 있자 숨을 짧게 뱉어내며 빗자루를 챙겨 그대로 나간다.
열린 문밖으로 세어 나가는 웃음소리에 모처럼 집안에 있던 사람들의 마음에도 조금은 웃음이 새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