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비한 동물사전 / 퍼시벌 그레이브스 × 소피아 S 키네울프
1926년, 여름.
아침에 눈을 뜬 이후로 내내 이상한 기분이었다. 붕 떠 있는 듯이, 유리된 듯이, 그런 이질적인 감각. 고개를 돌린 곳마다 눈에 들어오는 광경이 어제와 전혀 다를 바가 없어서 더 낯설다. 소피아는 들고 있던 빵을 쳐다보지도 않고 한 입 베어 물었다. 이것도 그대로네. 이상하게도. 당연하게도.
“그쪽에 뭐라도 있나?”
불쑥, 의식에 끼어드는 이 목소리도 그대로다. 소피아는 조용히 제게 말을 건넨 이를 바라보았다. 어떻게 말하면 좋을까. 자신의 감정을 설명하는 일이 늘 쉬운 일이었던 것은 아니지만, 오늘은 유난히 복잡하고 까다롭다. 평소보다 더 빠르게 두근대는 것도, 이상하게 의식이 넘실대는 것 같은 기분도. 혹시 어젯밤 제가 자는 사이에 저한테 무슨 마법이라도 거셨나요. 그녀는 생각했다. 상대는 뛰어난 마법사다. 가능성이 없지는 않다. 현실성은 전혀 없지만.
아주 약간, 고개를 옆으로 돌리면, 난간 너머로 인적 드문 거리가 보였다. 점심시간이 조금 비켜난 한낮의 거리에는 여름의 햇빛이 가득했다. 문득 조금 더운 듯 했다. 역시 실내에 앉을 걸 그랬나. 테이블 위에서 손가락을 까닥이며 그런 생각에 빠졌다가, 그녀는 어려운 주제로부터 자꾸 도망가려는 의식을 붙잡았다.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었더라. 이렇게 주의를 놓치는 것은 저답지 않다고 생각하며 다시 대화 상대를 돌아보면, 상대는 의아한 듯이, 그러나 아주 염려하지는 않는 듯한 시선으로 이쪽을 보고 있었다. 그녀는 작게 심호흡하고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그냥, 이상해서요.”
“뭐가?”
“……전부?”
제 입으로 말을 하면서도 확신이 없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리면, 퍼시벌은 커피잔을 내려놓고 그녀를 향해 조금 더 몸을 기울였다. 설명하는 본인도 이렇게 자신이 없는데 그는 얼마나 더 답답할까. 그렇게 생각하면, 눈썹을 한 번 까딱일 뿐 저를 재촉하거나 타박하지 않는 그가 새삼스럽게 대단하다 여겨지는 것이다. 그녀는 그런 생각을 잠시 흘려보내고, 다시 눈을 데굴데굴, 왼쪽으로, 또 오른쪽으로 굴렸다. 다른 이들에게는 오늘이 곧 어제의 다음 날이고, 어제와 같은 하루의 반복일 뿐인데, 제게만 다르게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실 내내 제대로 생각하지 않았을 뿐, 답은 제법 간단하게 나온다.
“왜 모든 게 다 그대로인 걸까요. 어제 무슨 일이 있었는데.”
바람이 살짝 불어왔다. 그녀는 흐트러지는 머리카락을 붙잡으며 말을 이었다. 이제는 조금 억울하기까지 했다.
어젯밤에,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열여섯 시간쯤 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당신은 모른다. 옆 테이블에 앉은 당신도, 지금 서둘러 거리를 가로지르는 당신도. 그래, 알 턱이 없지. 이내 바람이 그쳐, 그녀는 머리카락을 잡고 있던 손을 내려 테이블에 턱을 괴었다. 퍼시벌의 얼굴이 가깝게 보였다. 몇 번이고 이야기해서 이제는 입 아픈, 그 다정한 표정. 다정한 표정을 이루는 것은 다정한 각도의 눈썹이고, 다정한 시선이고, 다정한 입술의 모양이다. 얼핏 양손을 뻗으면 세상의 모든 다정함이 제 손안에 담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녀는 충동을 억누르려 다시 입을 뗐다.
“하룻밤 사이에 하늘과 땅이라도 뒤집힐 거로 생각했는걸요. 하늘의 색도 바뀌고, 옆집 사람도 바뀌고, 길가에 놓인 꽃도 바뀌고, 퍼시가 출근을 안 해도 되게 되고, 듣는 말도 달라지고, 이 레스토랑의 야외 좌석도, 이 자리도……, 어떻게든 변할 줄 알았지요, 저는.”
그러나 제 근거 없는 기대는, 혹은 예상은 뒤집히고, 그녀는 어제와 다를 바 없는 세상에 툭, 던져지게 된 것이었다. 참 이것도 저것도, 눈치가 없기는. 천지쯤, 개벽해줄 수도 있는 것 아닌가.
“그게 불만인가?”
이내 들려온 그의 목소리에는 웃음기가 섞여 있었다. 누가 보더라도 눈치를 챌 수 있을 만큼의 웃음기가 그의 입가에 머물렀다. 전에는 그 얼굴의 작은 변화도 알아볼 수 있는 게 제 나름의 자랑거리였는데 이제는 그것도 아니게 되어가는 것 같아요. 소피아는 당장이라도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것도 그로서는 나름 억누른 결과이리라. 다른 이들이 그의 표정을 알아볼 수 있게 된 대신 이제 그녀는 그 너머까지 짐작할 수 있었다. 그녀가 제법 진지해서, 정말로 억울한 듯이 보여서, 그의 웃음도 나름대로는 억눌렸으리라고. 그의 장난스러움은 이내 웃음이 아니라, 덧붙이는 말의 형태로 나타나는 것이다.
“어제 청혼받았는데 세상이 뒤집히지 않아서?”
“악!”
“쉿, 쉿.”
그가 그 단어를 꺼내는 것만으로, 그녀로서는 듣는 것만으로, 소피아는 반사적으로 제자리에서 펄쩍 뛰어올랐다. 그리고는 자신도 민망했던 듯이 슬그머니 주위를 살피고, 다행히 아무도 이쪽을 이상하게 살피지 않는 것에 안도하며, 뻐끔, 입을 열었다.
“가, 갑자기 그런, 이야기는…….”
“그 이야기 중인 것 아니었나? 그리고 그게 비밀도 아니고.”
그건 그렇지만……, 하고 우물쭈물 움츠러드는 이유를 안다.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완전히 알지는 못해도 어느 정도는 짐작해낼 수 있다. 그는 편안한 기색으로 픽 웃고는 그녀를 안심시키려는 듯이 몸을 뒤로 젖혀 의자에 기대며 거리를 벌렸다. 기대했던 대로, 예상했던 대로, 안도하는 듯한 한숨이 그녀의 입술 새로 새어 나왔다.
“긴장되는걸요…….”
반은 지난밤의 여운으로, 반은 앞으로의 일에 대한 걱정으로, 문득문득 신경이 곤두섰다. 앞으로 몇 주는 이럴 테다. 성격이 그랬다. 어쩔 수 없었다. 테이블 너머의 그가 손을 뻗어 머리를 쓰다듬어주면 어쩔 수 없이 조금은 그 예민하던 성정도 누그러지고 헤실헤실 웃음도 새어나오지만, 긴장감이 내내 머물러 있을 것임을, 모르지 않았다.
“벌써 그렇게 긴장하면 어떡하나.”
“그으러게요……. 이러다 전날에는 진짜로 밤 꼬박 새우고, 막상 늦잠 자서 식에 지각해버리는 결말이 될지도 몰라요…….”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물론, 도망칠 생각은 없다. 도망이라니. 그 순간을 기다리느라 안달이 나서 진이 빠져버린다면 모를까. 제가 오히려 더 바란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니 불확실한 것들을 향한 두려움도 이겨낼 수 있었다. 비장하기까지 한 태도로, 그녀는 괜히 자세도 한 번 가다듬고, 숨도 한 번 크게 쉬었다. 그러면 방금 전 제가 중얼거린 말이 우스워서라도 조금은 기분이 나아졌다.
“아무튼……, 천천히 하나씩 하죠, 뭐어.”
조금 전까지 긴장하고 있었던 것도, 어쩔 줄 모르고 있었던 것도, 청혼이라는 단어를 들은 것만으로 소란을 피웠던 것도 자신이면서, 그녀는 어른스러운 흉내를 내며 말했다. 한눈에 꿰뚫어 볼 수 있는 허세를 그는 굳이 들추어내지 않으며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커피잔에 마지막 남아 있던 한 모금을 마저 마셨다.
“그럼 이제 그 첫 번째를 하러 가지.”
“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서며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예상치 못했단 듯이 눈을 깜박이며 올려다보는 얼굴은 늘 알고 있는 것과 전혀 달라지지 않았고, 그래서 더, 이런 작은 것들을 갑작스레 던져놓는 일을 그만둘 수가 없었다. 그녀가 그런 제 속을 꿰뚫어 보고는 악취미라 눈을 흘겨도 분명 좋을 테다. 그렇게 되기는 아직 먼 듯 했으나. 아니, 어쩌면 이미 알고 있는지도 몰랐다. 예상치 못했던 곳에서 툭, 혹은 이미 예상했던 부분에서 툭, 제법 눈치가 좋고 생각이 깊은 이였으므로.
“……어디 가는데요?”
“가보면 아네.”
의심스러운 시선을 던지면서도 그녀는 그의 손을 잡고 몸을 일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