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GL 드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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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분기를 기점으로 드림캐가 직접 등장하지 않습니다.
* 1분기 기준 2년 뒤 즈음의 상황입니다.


‌ 세이라는 가게를 쓸고 닦는 중이었다. 키미히로가 한참 음식을 준비하고 있었기에 일손을 도와야 했다. 마루와 모로가 쓰는 방. 키미히로와 모코나가 쓰는 방, 그리고 자신의 방까지 청소하는 그의 모습은 처음 아르바이트를 하러 왔을 때보다 한결 가라앉아 있었다. 그에 비하면 키미히로는 무척이나 여유로워졌다. 여유로워 졌다기보다는 능청스러워졌다는 편이 더 알맞을 지도 모르겠다. 그는 유코를 닮아가고 있었다. 세이라는 그런 키미히로를 보다가 말했다.
 “선배.”
 “응?”
 “미안한데 오래 걸려? 주방 바닥도 좀 청소하고 싶은데.”
 “금방 끝낼게, 세이라 짱.”
 “응.”
 세이라가 차분해진 만큼 두 사람의 대화는 일전보다 무척 줄었다. 그 원인에는 유코가 있다는 사실을 모를 키미히로가 아니었다. 유코가 사라진 이후, 세이라는 몹시 충격을 받아 한동안 일상생활이 어려웠다. 식사도 거르고, 학교도 나가지 않아 키미히로 뿐만 아니라 시즈카와 히마와리도 걱정이 많았다. 결국 코하네가 가게를 찾아와 설득하고, 그를 품에 안고 한참 울고야 세이라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 때까지 키미히로를 비롯한 선배들과 코하네가 걱정한 걸 알았기에 몇 번이고 사과한 그였다. 키미히로가 주방에서 요리를 마치고 자리를 벗어나자, 세이라는 주방 바닥도 쓸고 닦았다. 청소를 끝내고 식사를 하는 동안에도 세이라는 말이 없었다. 그가 말을 꺼낸 건 식사를 마친 뒤였다.
 “잘 먹었습니다.”
 “세이라 짱, 요새 정말 말이 없네.”
 “피곤해서 그래. 내년이면 대학에 들어가야 하니까 공부도 해야 하고.”
 “그것만은 아니잖아?”
 “알면 더 이상 묻지 말지. 진짜 피곤한데.”
 “무리하면 안 돼. 알지?”
 “알아. 이 망할 선배야.”
 다른 이들이 식사를 마칠 대까지 기다리던 세이라는 과일을 깎아 먹이고 설거지를 했다. 요리의 ‘요’자도 모르는 그로서는 나름대로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셈이었다. 익숙하게 설거지를 하던 도중, 세이라는 고개를 떨궜다. 어쩐지 지금이라도 유코가 세이라를 보고 웃어줄 것만 같았다.
세이라는 결국 체육대학에 입시하기로 했다. 잘 되거나 안 되거나 관계없이 일을 할 수 없는 키미히로를 돕기 위한 선택이면서 동시에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기도 했다. 학교의 군기가 꽤나 험악해서 걱정하는 키미히로를 보며 그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온갖 이상하고 끔찍한 걸 경험한 게 언제부터인데 선배는 내가 그런 것에 겁먹을 것 같아?”
 “그건 아니지만.”
 “쓸데없이 걱정만 많아. 밖에 제대로 나가지도 못하면서.”
 “혹시라도 무슨 일 있으면 도메키 불러.”
 “도메키 선배님을 믿긴 믿나보네. 말은 그렇게 해도.”
 “너!”
 “장난이야, 장난. 알았어. 선배 말 잘 들을게. 선배는 유코 씨 대신이니까.”
 “유코 씨 있었으면 내 말은 안 들었을 거라는 말이네?”
 “당연한 거 아니야? 개가 주인 말을 듣지, 누구 말을 들어.”
 그런 일이 있고 난 뒤로 몸을 챙기려고 노력한 세이라였다. 하지만 키미히로가 난감한 상황에 처하면 여지없이 자신의 몸을 내던지는 건 불가항력이었다. 그가 말했듯 키미히로는 유코 대신이었으니 유코의 몸을 지키듯 키미히로를 지키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 때문에 더 신경을 쓰는 키미히로였다.
설거지를 한 뒤 세이라는 입시를 위해 공부를 시작했다. 새벽에도 공부를 해야 했기에 세이라의 방은 가게 맨 끝, 깊숙한 곳이었다. 하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종종 그 방에 유코가 찾아와 함께 시간을 보내기도 했고, 어쩐지 비밀스러운 기분이라 이상스런 만족감이 들었다. 그 방이 마치 유코를 향한 자신의 마음 같다고 생각한 세이라였다. 같은 공간에 있지만 너무도 먼, 유코는 언제나 세이라에게 그런 존재였다. 그럼에도 그런 그를 잊지 못하는 건 무슨 이유에서일까. 세이라는 연필 끝을 잘근거렸다.
 “보고 싶네.”
 자신도 모르게 나온 말에 세이라가 입을 틀어막았다. 한 번도 제대로 내어본 적 없는 자신의 진심이 낯설었다. 키미히로 뿐 아니라 유코한테도 말한 적 없는 날것의 감정이 그의 가슴을 짓누르고 있었다. 세이라는 거친 숨을 뱉었다. 가슴을 쥔 손이 바르르 떨리는 걸 느낀 그는 빈손으로 주먹을 쥐었다. 한 방울, 두 방울. 그의 손등 위로 눈물이 떨어졌다. 못돼먹은 인간. 그렇게 뇌까린 세이라는 벅벅 눈가를 닦았다. 공부가 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란 걸 깨닫자마자 그는 얼굴을 무릎에 묻고 숨죽여 흐느꼈다. 제 감정이 어떤 것인지 알면 밀어내기라도 해 주지 그걸 그대로 갖게 만든 유코가 원망스럽기도 하고, 그립기도 한 상황이 싫었다. 왜 아무것도 잊지 못해. 스스로를 원망하는 세이라의 목소리가 딸꾹질과 함께 터져나왔다. 지독하게 뼈아픈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