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것은 후카세 미나기가 막 시티에 발을 들였을 즘 있었던, 두 불법침입자의 은밀하고 기묘한 이야기이다.


 팀 새티스팩션의 해체는 아름답지 못했다. 아니, 그것은 단순히 아름답지 못하다는 말로 넘길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어찌 보면 처절하고, 어찌 보면 잔인한 끝이었지. 미나기는 장대비가 내리는 창밖을 내다보며 긴 한숨을 내뱉었다.

 ‘어쩐지 꿈자리가 사납더라니.’

 아직 잠이 덜 깬 얼굴이 식은땀으로 축축하다. 손등으로 제 이마를 훔친 미나기는 커튼으로 창문을 가리고 도로 침대에 누웠다.
 그날도 이렇게 비가 내리고 있었지. 벌써 1년도 더 지난 일이지만, 그는 제 팀의 마지막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팀 새티스팩션’의 결말이 다섯 명이 힘을 합쳐 새틀라이트를 정복한 것에서 끝났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어째서 키류는 거기서 만족하지 못하고 쓸데없는 분쟁들을 만들어 결국 시큐리티까지 건드리게 됐던 걸까. 지금 와서 곱씹어봐야 달라지는 건 없었지만, 후회가 밀려오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미나기! 넌, 너는 아니지?! 젠장! 놔! 미나기! 미나기!!’

 마지막으로 본 키류의 얼굴은 배신감과 분노로 일그러져 있었지만, 제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는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애절함이 있었다. 그리고 아마도, 그 부름에 응답하기 위해 소리쳤던 제 목소리도 똑같은 애절함이 있었겠지.

 “젠장….”

 역시 제 잘못이다. 자신이 끝까지 그의 곁에 남아서 뭘 하든 뜯어말렸어야 했는데, 욱해서 뛰쳐나간 바람에 말리지 못한 것이다. 크로우가, 잭이, 유세이가 떠났어도 자신은 남았어야 했는데. 그게 ‘연인’으로서의 도리였을 텐데.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악몽의 잔재를 씹던 미나기는, 조용한 노크소리에 상체를 들었다.

 “후카세 씨?”
 “…아.”

 하도 기분 나쁜 악몽이라 일찍 일어난 이유도 잊을 뻔 했다. 손님의 목소리에 오늘 일정을 떠올린 미나기는 다급히 일어나 방문을 열었다.
 문 밖에 서있는 것은 어색한 얼굴로 웃고 있는 잭의 비서, 사기리 미카게였다.

 “아틀라스 님이 로비의 카페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방금 일어나셨나요?”
 “…네. 죄송합니다. 금방 씻고 나갈게요.”
 “아녜요. 일단 아틀라스 님께는 조금 늦을 거라고 전해드릴게요.”

 처음 만났을 때와 비교하자면 참으로 부드러워진 태도다. 정중한 인사를 하는 상대에게 똑같이 예의바른 목례를 돌려준 미나기는 문을 닫고 욕실로 들어갔다. 그렇게나 경계하던 사람이 이렇게까지 변하다니. 아마 잭이 분명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서 오해하지 않게 만들어 놓은 게 분명했다.

 ‘아틀라스 님, 이라. 옛날엔 그냥 꼬맹이였는데. 출세했네.’

 하하. 건조한 웃음을 흘린 미나기는 간단한 세면과 환복만 한 후 1층으로 내려갔다.
 늦는다고 전한 것 치고는 빨리 내려왔기 때문일까. 따뜻한 김이 피어오르는 커피를 앞에 두고 다리를 꼬고 앉아있던 잭은 미나기의 등장에 불평 대신 의문을 표했다.

 “막 일어났다는 것 치곤 빨리도 내려왔는데, 미나기.”
 “킹을 기다리게 만들 수는 없으니까 후다닥 준비했지.”
 “흥.”

 이젠 자신도 어른이라는 걸까. 미나기의 놀림에 눈썹 하나 꿈쩍하지 않은 잭은 점원을 불러 커피를 한 잔 더 주문했다. ‘뭔가 할 말이 많은가 보네.’ 제 몫의 음료를 대신 챙겨주는 상대방의 행동에 그리 추측한 미나기는 잭의 맞은편에 편한 자세로 앉았다.

 “하나도 안 변한 거 같아 다행이군.”
 “뭐야, 잭. 그런 말은 보통 오랜만에 만난 당일에 해야 하는 거 아냐?”
 “…본인이 어떤 꼴로 나타났는지 까먹은 모양인데. 그 상황에서 변했는지 안 변했는지 분간이 갔을 거라 생각하나?”
 “하하하.”

 확실히 그건 심했지. 미나기는 어색하게 웃으며 시선을 돌렸다.
 얼마 전, 잠수와 수영만으로 네오 도미노 시티에 불법 침입한 미나기는 땅을 밟기 무섭게 다짜고짜 잭에게 찾아가 자초지종을 물었었다. 즉, 잭이 1년 만에 만난 미나기의 모습은 옷도 갈아입지도 않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젖은 상태였다는 소리였다.
 늦은 밤. 옛 지인이 물에 젖은 생쥐 꼴이 되어 찾아왔다.
 …그런 상황이라면, 역시 보통은 변했고 어쩌고 하기 전에 귀신이 아닌지 부터 확인하려 드는 게 정상이겠지. 그래. 방금은 제가 어리석었다. 미나기는 점원이 가져다준 차가운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말을 이어갔다.

 “하지만 마음이 급했으니까. 네겐 할 말이 많았고.”
 “당연하겠지. 남동생의 카드와 D휠을 훔쳐서 훌쩍 떠나버린 상대에게 할 말이 없다면 그게 더 이상하지 않나. 오히려 만나자마자 내게 주먹을 갈기지 않은 게 놀라울 지경인데.”
 “솔직히 다른 사람이었다면 주먹이 아니라 각목이라도 휘둘렀겠지만, 너니까 일단 말이나 들어보자 싶었던 거야.”

 저건 농담이 아닐 것이다. 제가 아는 후카세 미나기라면 유세이에게 폐를 끼친 상대라면 각목을 휘두르고도 남지. 역시 미나기는 변한 게 없다. 잭은 묘한 안도감에 웃어버렸다.

 “그런데 이야기는 대충 거기서 다 하지 않았어? 왜 만나자고 한 건지 궁금한데.”
 “내 이야기는 거의 다 했지만, 네게 들은 이야기는 거의 없었으니까.”
 “확실히 그건 그렇지만…, 나한테 들을 이야기가 있어? 근황이나 듣자고 부른 건 아닐 텐데.”

 자신이 시티에 불법침입하게 된 경위는 그날 다 말했다. 미나기는 잭이 궁금해 할 건 딱 그 정도밖에 없을 거라 생각했기에 무슨 이야기를 들으려고 이렇게 시간을 낸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제가 여기 온 목적은 딱 두 가지. 첫 번째는 아무 이유도 말하지 않고 갑자기 시티로 간 잭을 추궁하기 위해서였고, 두 번째는….

 “정말로 키류를 찾으러 다닐 생각인가? 이미 죽은 사람을?”

 …설마 했는데 그 두 번째 목적 때문에 부른 거였나. 반사적으로 인상을 찌푸린 미나기는 타는 목을 커피로 축여야 했다.
 이미 죽은 사람. 비록 사실이라고 해도 저 말이 제게 얼마나 잔인하게 파고드는지 잭이 모를 리가 없다. 그 또한 팀 새티스팩션의 일원이었고, 평소 아무렇지 않게 연애행각을 하는 키류에게 가장 잔소리를 많이 한 것도 잭이었으니까. 그럼에도 이런 모진 말을 하는 건, 다 자신을 생각하기 때문이겠지. 어릴 때부터 함께 자란 사이니까, 유세이 만큼은 아니지만, 그도 자신을 누나처럼 여기고 있었으니까. 분명 선의에서 한 소리겠지만…. 기분이 좋지 않은 건 어쩔 수 없었다.

 “말로만 죽었다고 들었지 시체를 본 것도 아니잖아? 난 진실을 알고 싶을 뿐이야.”
 “정말로 진실을 알고 싶다면 키류를 찾아다니는 게 아니라, 치안유지국으로 가야 하는 게 아닌가?”
 “내 눈으로 보기 전까진 아무것도 안 믿어. 제로 리버스에 대한 사실도 전부 감춘 이들이, 한 사람의 생사도 못 감출까봐?”

 달그락. 잔을 내려놓은 잭의 움직임은 요란했다.

 “그래서 이제 어쩌겠다는 거지? 무작정 시티를 떠돌며 키류의 행방에 대해 물을 건가?”
 “달리 방법이 없잖아? 마커가 붙은 녀석들이 다니는 으슥한 곳 위주로 돌아다니며 수소문해봐야지.”
 “정말이지…, 옛날부터 넌 이상한 곳에서 무모했지만 이렇게 나올 줄은 몰랐군,”

 어차피 자신이 말린다고 말려질 상대도 아니다. 바닥이 보일 만큼 내용물이 줄어든 자신의 잔을 가만히 내려다보던 잭은 상대의 눈으로 시선을 돌렸다.

 “기억하나? 고드윈이 내 신분을 숨겨주고 있다고 말했던 걸.”
 “그래. 네가 그날 한 말 다 기억해. 넌 킹이 되기 위해 여기 왔다고 했지. 그리고 널 여기로 부른 이들이 네 신분을 숨겨주고, 킹으로서 대우받게 해주고 있다고 한 것도 들었어.”
 “그들의 목적은 내가 아니다. 그들의 진짜 목적은 나를 찾으러 올 유세이였지. 그걸 알기까지 거의 1년이 걸렸다. 그 사실을 눈치 챈지 얼마 안 되어 바로 네가 와서 더 놀랐긴 했지만….”
 “…그 소리는, 넌 미끼라는 이야기야?”
 “미끼라. 그럴지도 모르지만, 정말로 유세이만 필요했다면 다른 수를 썼겠지. 나도 필요하지만, 궁극적인 목표는 유세이. 그렇게 보는 편이 정확할 거다. 무슨 꿍꿍이가 있는지는 나도 잘 모르지만.”

 후우. 긴 한숨을 내뱉은 잭이 조금 남아있던 커피를 전부 들이켰다. 요란하게도 내리는 비 때문일까. 두 사람의 입은 말 한마디를 내뱉을 때 마다 바싹 말라왔지만, 기분 나쁜 습기가 숨 쉴 때마다 숨을 막히게 해 인상을 펴기가 힘들었다.

 “만약 스스로 해결하기 힘든 일이 있다면 연락하도록. 킹으로서 치안유지국에 무어라 말해 볼 수는 있을 테니.”
 “…그래도 되는 거야?”
 “네가 그렇게 구질구질하게 구는 꼴을 오래 보고 싶지 않을 뿐이다. 어떤 결론이든 네가 빨리 끝을 봐야지 그만 둘 테니까, 최대한 은밀하게 도와주도록 하지.”

 말은 좀 얄밉게 하지만, 결국 도와주겠다는 게 아닌가. 하여간 솔직하지 못한 녀석이다. 심각한 분위기속에서도 참지 못하고 입꼬리를 올린 미나기가 슬그머니 턱을 괴었다.

 “고마워, 잭. 오늘 악몽은 다 액땜용이었나 보네.”
 “악몽? 그래서 늦잠을 잤나?”
 “응. 그날의 꿈을 꿨거든. 그때도 비가 이렇게 많이 왔었지.”

 상대의 말을 들은 잭의 미간이 순식간에 구겨졌다. ‘아, 괜한 이야기를 하였나.’ 미나기는 제가 쓸데없는 말을 했다 생각해 화제를 바꾸려 했지만, 그가 인상을 찌푸린 이유는 따로 있었다.

 “…기묘하군. 나도 어제, 그 시절 꿈을 꿨었다.”
 “뭐? 정말?”
 “그래. 기분 나쁠 정도로 선명한 꿈이었지. 네 표정이 이상하게도 선명해서, 만나자는 생각이 들었던 거기도 하고.”

 키류가 시큐리티 본부를 폭파시킨 죄로 연행되었던 날, 잭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미나기가 우는 모습을 봤었다. 그것도 그냥 눈물만 뚝뚝 흘리는 게 아니라, 참으로 감정적이게도 울부짖었었지. 두 사람이 어느새 눈이 맞아 사귀고 있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대체 얼마나 좋아했으면 유세이가 말리는데도 뛰쳐나가려고 발버둥 치며 울었던 걸까.
 문득 눈앞의 여자를 이해할 수 없게 된 잭은, 악의 없는 질문을 던졌다.

 “미나기, 아직도 키류를 좋아하나?”
 “…응.”

 조심스럽게 내뱉은 대답은 단호했다. 마치, 제가 대답할 말은 그것밖에 없다는 것처럼.
 하지만 그럴 수밖에 없지 않겠나. 유세이에게도 잭에게도 크로우에게도 키류는 구세주 같은 존재이긴 했지만, 미나기에게 있어 키류 쿄스케는 구세주 이상의 존재였다.
 풋풋했던 17살. 오직 유세이를 돌보는 것에만 집중하느라 바깥과 교류하지도 않던 그에게 갑자기 나타난 키류의 존재감은 얼마나 크고 강렬했던가. 같이 지낸지 얼마 되지도 않은 팀원들을 손쉽게 리드하는 모습도, 파워로 몰아붙이는 듀얼 스타일도, 뻔뻔할 정도로 잘생겼던 얼굴과 능청스럽게 마음의 거리를 좁히던 모습까지 전부 다. 키류의 그 모든 것이, 미나기에겐 비정상적일 정도로 매력적이게 느껴졌었다.
 아마 무도회에서 로미오를 만난 줄리엣도 이런 기분이 아니었을까. 물론 새틀라이트는 화려한 귀족들의 저택처럼 아름답지는 않았지만, 오히려 그런 거친 환경이었기에 상대가 더 눈부시게 느껴졌던 걸지도 몰랐지. 원래 빛은, 어둠 속에서 가장 밝아 보이는 법이었으니까.

 “아직도 사랑하고 있어.”

 이 모든 것이 어린 날의 치기어린 충동이라 해도 상관없다. 적어도 서로 사랑했던 그 순간만큼은, 자신들이 이 세상에서 가장 진솔한 연인이었으니까.

 “그러니까 시체라도 찾을 거야. 먼저 손을 놓은 건 나니까.”
 “키류가 그렇게 된 건 네 탓이 아니다. 네가 옆에 붙어서 말렸어도 결국은 사고를 쳤을 거라는 걸, 스스로도 알고 있지 않나?”
 “하지만 그렇다 해도 내가 먼저 쿄스케를 떠난 건 사실이니까.”
 “애인이 떠날 정도로 모진 소리를 한 그 녀석이 나쁜 거지. 애초에….”

 ‘아틀라스 님.’ 잭은 무어라 더 말하려다 말고 자신을 부르는 비서의 목소리에 입을 닫았다. 역시 듀얼 킹은 바쁘다는 것인가. 대화가 끊어진 김에 시간을 확인한 미나기는 시간이 꽤 흘렀다는 걸 눈치 채고 잭에게 손짓했다.

 “가봐야 하는 거지? 난 신경 쓰지 말고 먼저 가.”
 “…그러도록 하지. 먼저 일어나겠다.”
 “그래. 그래. 몸조심하고.”

 ‘누나 노릇 하기는.’ 투덜거리며 일어난 잭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자리를 떴다. 상대가 떠난 후에도 가만히 자리에 앉아 창밖만 보던 미나기는 그칠 기미가 없어 보이는 비에 질려 눈을 감았다.
 어쩌다 이렇게 좋아하게 되어버린 걸까. 그렇게 평생 돌보던 유세이마저 내버려 두고 찾으러 올 정도로 자신이 그를 좋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역시 조금은 거리를 두는 게 서로에게 좋았을까. 그가 편하게 불러도 좋다고 꾀었어도, 꿋꿋이 ‘키류 군’이라고만 불렀다면….

 ‘하지만 후회하지는 않아.’

 후회만 하고 있기에는 사랑했던 모든 순간들이 너무나도 뜨겁고 강렬했다. 그러니, 반드시 키류의 행방을 명확하게 하고 이 열기를 정리하지 않으면 안 된다.
 다시 한 번 결심을 굳힌 미나기는 생각으로 무거워진 머리를 쉬게 하기 위해 서둘러 제 방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미나기의 염원과는 다르게 그 열기가 깔끔하게 정리 되는 일은 없었다.
그가 키류의 행방을 알게 된 후 가장 먼저 느낀 감정은, 허무함도 안심도 아닌 ‘당혹감’이었으니까.